우석훈, 이제 무엇으로 희망을 말할 것인가 - '88만원 세대'를 넘어 한국사회의 희망 찾기
우석훈.지승호 지음 / 시대의창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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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C급 경제학자 우석훈 교수와 인터뷰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지승호 작가의 대담이다.
우석훈 교수는 20대에게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을 부여한 경제학자다. 본인은 경제계의 인디밴드라고 하지만, 대중이 너무 많은 관심을 보여 오버밴드화 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한국은 지나치게 자본주의화 되어 가면서 모든 가치의 척도는 돈으로 매겨지고 있다. 자본주의 시대의 부작용은 승자독식의 법칙이다.
흔히 우스개 소리로 돈 놓고 돈 먹기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이 그냥 우스개 소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돈이 많은 사람이 돈을 더 많이 먹고, 돈이 없는 사람은 아예 게임 참여 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소외된 계층은 소외된 본인들의 문제라고 치부해 버리고 만다.
평균법의 함정이라고나 할까? 우리의 리더들은 더 이상 뒤쳐진 사람들을 이끌어 줄 여유가 없다.
앞을 더욱 이끌어서 전체 합을 높여 전체 평균을 높이는 것이 더욱 쉽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2의 제곱은 4지만, 1의 제곱은 1일 뿐이다. 뒤쳐진 1을 힘들게 제곱하는 것 보다는 앞서가는 2를 제곱해서 합계를 늘려가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한국은 계속해서 아파트를 짓고, 숲을 골프장으로 바꾸고, 갯벌을 매 꾸고, 재개발을 추진한다. 그 쪽이 돈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기에 경제, 언론, 정치의 기득권 세력들은 거대한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내부 결속을 공고히 한다.
예전이었으면 은퇴해서 전원 생활을 즐겨야 했을 그들은 아직도 권력의 핵심에 있으며, 현역에서 물러나더라도 자신들의 후계자를 통해서 영향력을 꾸준히 행사할 수 있다.
그래서 소위 돈 없고, 빽 없는 20대는 뭉치지 않으며 각개 격파 당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의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학교 때 선배하며 따랐던 30대들이 끌어 줄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다. 그들도 지금 40대와의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하루하루 필사적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대간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자유 경쟁을 하면 안 된다. 이것은 공정하지 않은 게임이기 때문이다. 마치 튼튼한 갑옷과 투구를 쓰고 창까지 든 전사와 팬티 한 장 걸친 맨몸에 나뭇가지를 든 전사와 싸우라고 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정한 규칙이 필요한 것이고 심판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그런 심판과 규칙은 보이지 않는다.
매번 대선 때마다 변하는 정책들로 인해서 한국은 일관성 있게 발전해 온 것이 없는 것 같다. 공생을 꾀하다가도 어느 순간 엘리트 주의로 변화하고 친환경주의를 택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개발 논리로 변하고 만다. 그래서 우리 같은 서민은 항상 롤러 코스트를 타는 느낌이다. 아마도 우리의 리더들은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을 신봉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라는 말을 더 신봉한다.
예술은 돈 앞에서 처참하게 죽었다. 우리는 책을 읽지 않으며, 순수 문학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이며, 디지털 시대에 역행하는 아날로그적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직설적이고 리얼타임으로 움직이는 버라이어티 쇼에 익숙해지다 보니, 함축적이고 다의적인 시를 읽고 해석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10대의 손자가 80대의 할머니와 대화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답답하고 의미 없는 일일 뿐이다.
그래서 세상에 예술적인 비판은 없어져 버렸다. 직설적으로 네가 나쁘다.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냐. 그것도 안되면 주먹을 쓴다.
예술인으로 산다는 것은 수도승의 자세가 필요하다. 아예 물질적인 욕심을 버리고, 평범한 가정을 꾸린다는 생각까지 버리고, 모든 인간으로서의 물질적인 욕심을 버려야 예술인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현대 시대적 흐름에 제트기를 타고 역주행하는 꼴이다. 돈이 최고의 가치인 지금 시대에서 돈을 버리고 무엇을 쫓아야 하는 것일까? 라는 가치 혼란이 온다. 헤리포터로 거대 갑부가 된 조앤 K. 롤링과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라고 노래하는 천상병 시인의 삶 중에서 과연 천상병 시인의 삶을 선택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 것일까? 어렸을 때는 과거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당연히 세상은 발전할 것이고 우리는 행복할 것이다라고 믿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나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을까? 라는 의구심이 든다. 차라리 집에 돌아가는 길에 호떡을 사 들고 가 가족들끼리 따뜻한 아랫목에서 옹기종기 모여 호호 불면서 호떡을 먹는 것이 더욱 행복하지 않았을까?
아파트라는 천공의 섬 라퓨타를 사기 위해 일평생 가족을 외면하면서 회사에 목숨 바쳐 살기 보다는 작은 텃밭이 딸린 집에서 가족과 뒹굴며 사는 것이 행복하지 않을까?
나는 한국이 덩치만 커가기 보다는 내부적으로 단단해졌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GDP 5% 상승보다는 빈민층 5% 감소가 더 자랑스럽고,
수출 몇천억불 흑자보다는 일반 가정에서 가처분 소득이 흑자가 났으면 좋겠고,
골프장에서 스프링쿨러 돌아가는 소리보다는 숲 속에서 계곡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더 값지다고 생각한다.
국회에서 고함소리 보다는 웃음이 넘쳐났으면 좋겠고, 가끔은 백만부가 팔린 시집이 생기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좌파 우파가 서로 상호 비방보다는 가끔은 서로를 잘했다고, 그것은 당신들 생각이 맞다고 인정할 수 있는 여유와 화합도 보여줬으면 좋겠다.
내가 너무 많은 희망을 가진 것일까? 나는 욕심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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