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그림의 비밀 - 우리는 그들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잉에 브로흐만 지음, 심희섭 옮김 / 섬돌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사람 속을 들여다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몸 속도 그렇고 마음 속도 그렇다. 어른들끼리는 그나마 사정이 좀 낫다. 말이란 걸 조리있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내 마음이 지금 이렇게 느끼고 있고 나는 지금 이렇게 생각하고 있고 내 몸이 지금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고 말할 수 있으니 다른 사람이 그 사람 속을 들여다보는 게 조금은 가능한 편이다. 그러나 어린 아이는 어떤가?

말도 제대로 못하고 더더욱 상상이 풍부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의 말을 현실적인 우리의 생각으로 해석해내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아기때부터 아기의 울음소리 하나만으로 우리는 여러 가지 아이의 욕구 또는 갈망을 해석해내야 하는 어려운 수련을 받아왔다. 그러나 그때는 엄마와 아이가 서로 연결되어 있던 때라  직관적으로 그것을 알아차리곤 했던 것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그 연결의 끈은 느슨해지고 아이는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로 변해간다. 엄마 되기, 아빠 되기가 너무나 어렵고 힘든 일로 여겨지기 시작한다. 그건 아이 속을 들여다볼 수 없기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아이가 아픈데도 그냥 지나치기도 하고 아이의 성장에 문제가 있는데도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기도 한다.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겨왔다. 아이가 제대로 말할 때까지,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잉에 브로흐만은 아이들 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성장을 겉으로 드러낸다고 말이다. 보아주기를 바라면서,  부모가 할 일은 단지 아이에게 종이와 색연필과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고요한 시간을 주는 것뿐이다. 그리고 곁에 앉아 조용히 할 일을 하면서 아이를 지켜보는 것뿐이다. 이렇게 단순하고 별다른 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일을 통해서 우리는 아이를 깊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이는 성장하는 존재다. 잠시도 쉬지 않고 자라고 변화한다. 무언가 역동적인 힘과 에너지가 아이 안에서 꿈틀대며 작용하고 있다. 그것은 흘러 넘쳐서 자국을 남기길 원한다. 그걸 표현하지 못할 때 아이들은 괴로워하고 짜증을 내고 화를 낸다는 거다. 그러나 일단 아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놀라운 집중력으로 그림들을 그려낸다. 아이의 손 아래서 무언가 형태가 나타나는 걸 지켜보는 것은 정말 경이로운 일이다. 아이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때 그려지는 형태들은 단순한 끄적거림이 아니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경험한 어떤 힘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태내에서 또는 머나먼 우주에서 유영할 때의 기억들을 추상적 형태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마치 원시인들이 동굴 속에서 자신들의 경험과 기억을 그려낸 것처럼. 그들의 그림은 그래서 무척이나 닮아있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라면서 자신의 신체가 어떻게 발달하고 있는지도 그려낸다고 한다. 먼저 머리와 몸통 그리고 내부의 기관들, 팔과 다리가 어떻게 자리잡고 그것을 자신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도 그림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심지어는 자신이 아팠던 곳, 아픈 곳까지도 정확하게 그림에 나타내고 있다. 자신의 신체 뿐만 아니라 내적인 부분들도 그림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아이가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했는지도 그림을 관찰해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학교에 갈 준비가 되었는지, 땅에서 제대로 굳건하게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지 말이다.

이런 그림들은 전세계 어린이들이 보편적으로 그려내는 일정한 발달의 단계를 보이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런 아이들의 발달과 상응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그림을 통해 아이들의 발달을 알아보려고 하는 것은 단지 아이가 정상인지 아닌지, 우리 아이가 제대로 발달 단계를 밟고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아이를 깊게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작은 어른이 아니고 아주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우리가 깊이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세상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 세상이 좀더 평화롭고 안정되고 아름다워야 하는 것이다. 아이의 그림에서 우리는 세상의 힘이 아이를 통해 표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세상이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걸 깨우치고 있다. 그러면서 부모로서의 자각이 생기게 된다. 세상의 일부로서 부모는 아이가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그는 세상의 아이인 것이다. 부모가 할 일은 그 아이를 지켜보고 세상을 좀더 아름답게 가꿔나가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이 책은 그런 걸 가르쳐 준다. 배운다는 건 언제나 좋은 일이다. 특히나 꼭 알아야할 걸 가르쳐주는 책은 정말 소중하다. 지금 시대에서 부모 되기란 얼마나 힘겨운가. 그러나 우리가 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알게 되면, 그들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면 그 힘듬 속에서도 진정한 기쁨이 솟아나온다. 부모가 된다는 게 어떤 건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조금은 쉬워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도 실용서라고 볼 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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