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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민주주의 내란의 끝 - 역사학자 전우용과 앵커 최지은의 대담 ㅣ K민주주의 다시만난세계
전우용.최지은 지음 / 책이라는신화 / 2025년 1월
평점 :
이번 12.3을 겪으면서 다시 만난 세계인 '민주주의'에 대한 역사학자 전우용과 앵커 최지은의 대화 형식으로 만든 책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감에서 했던 말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을까? 죽은 자가 산 자를 도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역사에 대한 시선을 새로 잡아야 했다는 말에 동의한다. 전우용 역사학자가 말하는 역사 공부의 첫 번째 의의는 '과거가 현재를 돕게 만드는 것'이다. '자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도와달라'라고 부탁해야 도와준다.'라는 것이었다. 그 시선으로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1 민주주의란
1882년 조선이 미국과 수호 통상조약을 체결할 때 미국 측 서명자 직함이 '백리새천덕'이었는데 이것을 일본인들이 '대통령'으로 번역을 했는데 실제 '통령'은 군에서의 대령 계급 정도였다. 한중일 모두에 있던 계급으로 수군통령은 배 여덟 척을 지휘하는 직책이었다. 그 정도의 지위 앞에 '대'를 붙여서 만들어진 말이다. 그리고 존칭을 '각하'라고 하는데 원래 각하는 폐하, 전하, 저하, 합하 다음의 위계이다. 실제로 조선시대 정승은 합하, 판서는 각하였기 때문에 군주보다도 훨씬 낮추어 부른 거다.
그러니 실제적으로 대통령을 낮게 부른 것이다. 일본에서는 대통령이 자리 잡은 뒤에 중국은 대통령을 '총통' 번역한단다. 그러니까 한자에서는 총통보다 한 등급 높고 황제나 왕보다는 아랫급이다. 그리고 영부인이라는 말은 대통령의 부인이 아니라 누구한테나 영부인이라고 쓴다고 한다.
그러니 일본에서 만든 대통령이라는 말은 그렇게 높은 자리가 아니었는데 지금은 변질되었다고 보는 걸로 해석했다. 또한 인과 민은 차이가 있는데 민은 '전문성이 없다'라는 뜻이기도 한데 민주주의에서 쓰이는 '민'은 그 민자가 쓰인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도 양반의 수는 인으로, 평민의 수를 셀 때는 명으로 세었다. 그 당시 군주제에서는 민주주의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좋은 제도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2 민주주의의 반대, 독재체제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의 장점을 발견했지만 왕을 끌어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민'의 개념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민주주의'라는 말이 들어온 15년쯤 뒤에 1897년 독립협회 주체로 '대군주 폐하 탄신 경축회'에서 독립협회 회장 윤치호의 연설을 인용한다. 이후에 '민'은 사람을 대표하는 단어이자 대중 집회의 주체가 된 것이라고 한다. 1907년 신민회를 결성 후 민주국가를 만들기 위해 해 온 한국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 시민사회 운동이 기본이었다.
우리가 그동안 '민'이라는 말을 '종'이라는 말고 똑같은 뜻으로 써왔다.
민은 '관인'의 의복과 음식을 공급하는 종에 불과했는데,
이제부터는 '민'을 좋은 뜻으로 쓰자.
'민'이 위가 되고 '관'이 아래가 되는 세상이라야
비로소 개화가 될 것이다.
윤치호의 연설 중에서
민주주의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말을 먼저 듣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였고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운동은 군주제와 병립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뒤 독립운동가들이 '민'이 주권을 나눠 갖고 함께 지키는 '민주제'를 선택하는 수밖에 없었기에 독립운동이 민주국가수립운동이자 민주혁명운동이 된 것이다. 해방 후에도 대한 제국에서 '제'한 글자만 빼고 '대한국'이 되었고 '대한민국'이라고 한 것은 '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국호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3 왕당파와의 싸움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군국주의 국가라서 민주주의를 좋은 제도라 가르 치지 않았기에 그 당시 판사, 검사, 총독부 고위 관리가 된 사람들은 반민주적으로 생각했다. '민'은 통제와 억압의 대상이었고 1945년 9월 미 군정이 시작된 후에 민주제를 경험하지 못한 국민들은 왕이 없는 세상에 갈피를 못 잡았고 그 후 경찰에서 민중의 지팡이란 말이 생겼다. 천황 말고 수천만명의 뜻을 따라야 하는 상황에서 '친절'이 중요시되었다. 그 세탁을 위한 것이 '여자 경찰대'를 창설한 것이다. 천왕의 칼이었던 과거를 세탁하기 위해서 여경을 뽑기 시작했다. 군주제적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라는 이승만을 왕처럼 섬겨서 종신 집권을 꿈꾸게 되었다. 민의 나라가 반민주적 친일파들이 이승만을 업고 군국주의 왕조국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4·19는 현행 헌법에 '불의에 항거한 민주이념'으로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4·19이후 사람들의 신민 의식이 바뀌지 않았기에 5·16쿠데타도 저항하지 않았고 박정희도 이승만의 길을 갔다. 유사 왕조체제에 '자유민주주의'라 말하고 반대말이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라고 가르칠 수밖에 없었다.
민주주의는 군주제를 타도하는 의지여야 하는데 반공을 내세운 유사 군주제를 자유민주주의로 잘못 아는 사람이 많았다는데 지금도 그건 여전히 이어져 오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전유용 역사학자는 전태일 열사의 죽음 이후 '인권운동'과 '생존권 운동'이 '민주화운동'과 결합했고, 3·1운동과 해방 직후 민주 국가 수립 운동의 주체였던 '민중' 개념이 소생했다고 했다.
1987년 6월 항쟁은 '유사 왕정체제'를 '민주체제'로 바꾸기 위한 '시민혁명'의 성격을 지닌 운동이지만 제5공화국이 무너졌어도 '민주화운동의 승리'라고 할 수 없다. 그러려면 1987년 새 헌법을 만들었어야 했다. 현행 헌법이 독재 체제에서 기득권을 누려온 정치세력가 민주화 운동 세력 사이의 타협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 근현대사를 왕당파와 공화파 사이의 싸움의 역사로 본다면 '종전협정'이 아니라 '휴전협정'인 셈이다.
특히 개인적으로 집중해서 봐야겠다고 생각한 부분은 보수와 진보의 가치기준이었다.
보수는 개인의 자유, 기업 활동의 자유 등 자본주의의 운영 원리를 고수하려 한다
진보는 사회주의 혹은 사회민주주의적 가치를 중시하지만 한국에는 국제 기준의 '진보'가 자리 잡을 수 없었다.
김구는 민족주의자이다. 그를 민족주의자인데 좌파로 분류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경제개발을 위한 독재를 불가피했다는 유신독재 세력은 개발 독재론을 내세우며 산업화 세력이라는 이름을 붙여 과거 행적을 합리화했고 스스로 보수라고 칭한다. 이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이 비판적 언론을 탄압하고 협조적 언론을 육성했기에 반민주 유사 왕정 독재세력에게 보수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에 반대하면 뭉뚱그려 '진보'라 불렀다는 말은 동의한다.
#4 계엄
전우용 역사학자가 말하는 국내에 선포하는 계엄은 '나라 전체를 선포권자의 점령지로 만들고 국민 전체를 포로로 취급하는 행위라고 한다. 왜냐하면 계엄은 본래 '점령지에 대한 군정'이기 때문이다. 그 상황 자체가 인간 내면의 악마성을 노출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만약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이 핵심 인물 1%만 처단해도 10만 명이니 유사 군주제와 파시즘 체제로 귀결되어 얼마나 더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그걸 막은 맨손의 시민들은 이전의 3·1운동, 4·19, 5·16, 6·10에 대한 기억이 그 당시 현재였던 그 상황에 맞선 것이다.
#5 민주화는 '민'의 수준을 높여야 완성
2018년 브라질의 법과 언론을 이용한 연성 쿠데타를 일으킨 것처럼 윤석열의 당선 과정에서도 똑같이 일어났다. 지배층이 나라를 망치고 피지배층이 나라를 살리는 역사가 반복되는 현실이다. 개인적으로는 일은 6월 항쟁의 세대와 지금의 계엄을 겪은 세대의 통합으로 보고 싶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고 말하는 전우용 역사학자의 말처럼 끊임없이 '민'이 발전해야 한다. 그러려면 제대로 선거를 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총평, 자극적인 '내란의 끝'이라는 제목에 끌리고 난 뒤, 최지은 앵커의 시기적절한 질문과 전우용 역사학자가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역사를 오가는 통찰력이 있어서 더 빛나는 책이다.
책에서 설명하지 않는 민주주의와 파시즘과 유사 군주제에 대한 정확한 시선으로 다시 제대로 역사를 보는 눈을 길러준다. 진짜 이 책으로 '역사를 보는 다시 만난 세계'와 마주하길 바란다.
© 자소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기록하였음을 밝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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