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로 꿈꾸다 - 여덟 가지 테마로 읽는 고구려 고분벽화 이야기
이종수 지음 / 하늘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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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 “화제로 읽어보는 고구려 고분벽화 이야기” <르네21 ‘금요대중강좌’ 리뷰>


이것은 그림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도 무덤의 한 벽을 차지한 ‘고분벽화’에 대한 이야기. 헌데, 우리는 이 벽화들을 어디에서 보았기에 이리도 낯이 익은 것일까. 우리에게 벽화는 아름다운 ‘그림’으로 다가왔었던 것일까? 벽화가 내포한 아름다움의 이미지가 오래도록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아 ‘익숙함’이란 감정을 이끌어 냈던 것일까?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 벽화는 역사교과서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사적 자료’이자 혹은 시험문제의 ‘정답’으로 더욱 익숙하지 않은가. 혹자는 이러한 이질적인 익숙함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종수 선생님의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그녀에 의해 벽화는 자료가 아닌 ‘그림’본연의 역할로 돌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아름답게’풀어낸다.

그 옛날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었기에 이미 떠나버린 망자의 주위에 영원히 머물려 했을까. 이종수 선생님이 보여주는 벽화들은 다음의 이야기들을 해준다. 우선, 망자 자신의 이야기. 이것이 벽화가 간직한 스토리텔링의 시작점이다. 무덤의 측실에 고요히 자리 잡은 묘주의 초상은 많은 것을 암시한다. 묘주(墓主)를 명시하는 문자가 없어도, 부장품이 없어도 한 폭의 초상은 이곳이 ‘그’의 무덤임을 상상하게 한다. 우리의 상상을 자극하는 ‘이미지’는 그 어떤 확증의 자료보다 더욱 확고하게 무덤의 주인에 대해 이야기를 해준다. 묘주가 사후에 남기고자 한 못다 한 이야기 까지도 말이다. 여기에 묘주와 사랑을 나눴던 어떤 이가 불현듯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벽화의 이야기는 서서히 클라이맥스를 향해간다. 이때부터 벽화는 묘주 자신만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함께하는 이들과의 삶, 생활을 이야기해준다. 그 유명한 무용총의 수렵도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 이종수 선생님은 이러한 과정을 벽화 이미지의 ‘탈주체화’라 표현한다. 이는 4C부터 6C까지 진행되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특징인데, 후기로 갈수록 벽화는 인물묘사에서 벗어나 점차 생활, 상징물 등 다양한 이야기를 추구한다. 그리고 6C에 이르러 강서대묘의 네 벽을 모두 차지한 벽화‘사신도’는, 이즈음부터 고구려 벽화가 내세를 기원하는 ‘상징’을 주로 이야기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여타의 그림들이 그러하듯, 고구려 고분벽화 역시 상징물이 지닌 ‘의미’만을 표현하기위해 수많은 ‘사신도’와 ‘연꽃’을 벽에 새기진 않았다. 상징물은 ‘의미’만으로 해석되는 것이 아니며, 내세를 기원하기 위해서만 ‘사신’과 ‘연꽃’을 그리지는 않는다. 사신과 연꽃 이라는 회화의 소재들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 그 자체로 아름답다면 그 뿐인 것이다. 여기에 온갖 해석과 미사여구는 사족이 될 때도 있다. 이것은 이종수 선생님이 강조하는 벽화를 ‘그림 자체’로 읽는 독법과 무관한 것이 아닐 것이다. 

단상. 수많은 이야기를 해주는 벽화. 그러나 벽화가 해주지 못하는 이야기도 있는 듯하다. 한번 생각해본다. 벽화가 있다는 것. 벽화가 새겨질 만한 무덤의 주인이라는 것. 이 자체가 당시 묘주의 부와 권력에 대한 증빙이다. 벽화는 어쩌면 그 당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들만’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르네21 '금요대중강좌' 수강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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