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위의 인문학 - 지도 위에 그려진 인류 문명의 유쾌한 탐험
사이먼 가필드 지음, 김명남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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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이먼 가필드, 『지도 위의 인문학』, (역사/문화, 576p)




"지도에 바치는 오마주라고 할 만한 훌륭한 책,"


직접 읽어보면 알겠지만 관한 찬사가 붙은 게 아닌 것 같다. 책 두께를 보면 알겠지만 과연 지도의 역사에 대해 모든 걸 총망라하고 있다.

용들이 출몰하는 고대지도부터 에베레스트 꼭대기 길로 안내하는 GPS까지, 지도의 역사가 곧 인류의 역사인 것이다.


지도 하나로 인류의 역사와 미래 문명을 살펴보는 놀라운 책이다. 지금부터 576페이지의 분량 중에서도 인상적이였던 이야기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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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들의 형태는 다양했다. 비교적 알아보기 쉬운 것도 있었고, 굉장히 기이한 것도 있었다. 그러나 목적은 대부분 같았다.

그 지도들은 실제로 쓰려고 만든 게 아니었다. 적어도 여행용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철학적, 정치적, 종교적, 백과사전적, 개념적 관심사를 진술하는 지도들이었다.




파라 마우로의 세계지도처럼 고대지도임에도 현대지도 크게 다를바 없는 비교적 정확함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대부터 중세로 거슬러 올라오면서 역사적으로도 큰 논란을 일으킬만한 지도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콜럼버스보다 일찍 아메리카 대륙을 만났고 지도를 남겨 기록했던 사람이 있다.

콜럼버스로부터 약 500년 전에 고대 북유럽 탐험가들이 북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정착했음을 암시하는 내용이 그러져 있었던 것이다.

바이킹이 그곳으로 항해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는 지리학계에 널리 알려진 전설이었으나, 지도 형태의 증거가 발견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 증거가 나타난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것은 막론하고 신세계를 기록한 최초의 유럽문서일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논란도 뒤따를 것이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이 몽땅 거짓이었다고?


 


이 지도 <빈랜드 지도>는 여전히 '상당한 논쟁의 대상'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빈랜드 지도>가 위조품이라도(확실히 알기는 영영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 지도의 진정하고 영속적인 가치는 진품이냐 날조품이냐 하는 문제를 넘어선다.


<빈랜드 지도>의 가치는 그 속에 담긴 이야기에 있기 때문이다. 빈랜드의 미스터리는 우리에게 보여준다.

지도는 우리를 매료시키고 흥분시키고 자극한다는 것, 역사의 경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

또한 우리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지에 관한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묵묵히 전달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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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같은 아프리카 지도임에도 지도 안에 내용이 꽉찬 지도와 100년 후에는 반대로 속이 텅빈 지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지도는 드러내는 힘만이 아니라 감추는 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상기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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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도가 좋다. 지도의 지명들이 좋고, 길을 찾아주면서 길을 잃게도 만든 사실 또한 좋다.

현실에서든 머릿속에서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장소로 데려다준다는 사실도 좋아한다.


눈으로 볼 수 있거나 조금이라도 상상력이 있어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마르지 않는 흥미를 제공할 것들이 쌓여 있지 않은가!

그러한 나로썬 이런 지도의 역사를 다룬 책을 접하게 된 것 또한 정말로 감사하고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지도는 훌륭한 작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격렬한 좌절, 무한한 행복감, 감정적이고 인간적인 모든 요소를 탐험 과정과 섞어서 고스란히 보여줄 작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남극의 추위가 어떤 느낌인지는 알아도 달에서 걷는 일이 어떤 느낌인지는 모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지도 중 하나는 아래와 같다.




세계적으로도 1000부밖에 출간이 안 되었다는 책, 그 값은 1억원에 달하며 전용기로 이동해야 하고 운반 인원만도 6명이 필요하다.

이러한 지도책을 소유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것 또한 궁극적으로 내 자아실현에 한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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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지도는 전쟁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처칠이 지구본 때문에 전쟁을 이긴 건 아니었지만 처칠의 지도실은

그가 전쟁에서 지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지도실이란 다우닝 가 뒤편 가까운 곳 지하에 요새처럼 구축된 사무실 한가운데에 있는 방이다.

처칠이 런던에 있으면서 지도실이나 그 별실에 들르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었다고 한다.




고대에 프롤레마이오스에서부터 현대의 위성항법장치 GPS까지 21가지의 지도 이야기를 다뤄오면서

pocket map이라는 챕터를 통해 그밖에 비하인드 스토리들도 실려있는데 이 역시 지도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재밌는 역할을 하고 있다.




위 이야기는 사실은 여자들도 어려움 없이 방향을 찾을 수 있지만, 여자들에게 방향을 찾아보라고 요구한 방법이 잘못일지도 모른다는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궁극적으로는 채집시절부터 발달해온 인류의 남녀간의 성역할 차이에서 시작됐다는 근거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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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우리는 이야기가 시작된 지점으로 돌아왔다. 지도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주기 시작했던 지점으로.

그러나 이제 아프리카는 더는 검지 않다. 극지방은 더는 하얗지 않다.

오래전에 우리가 우리를 안내하고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로서 지도에 부여했던 가치들은 GPS 시대에도 여전히 활기차게 살아 있다.


그리고 지도는 왜곡을 일으킨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용서하련다.

둥그런 세상을 종이에 납작하려 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어찌 약간의 비례를 희생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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