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
조 퀴넌 지음, 이세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정말 긴 제목의 책을 만났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보다 무려 네 글자가 더 많다. (원서의 제목은 'One for the Books'다.) 책들이 안내하는 여행은 은하수보다 더 광대하기에 긴 제목도 괜찮다. 다만 이 책의 제목을 안 틀리고 한 번에 말하는 게 어려울 뿐... (나만 그래?) 나라도 줄여서 '아멸지단'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어찌 됐든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책을 읽는 사람들이 멸종되는 건 사실인 듯하다. 미국은 연간 독서량이 4권이라 한다. 우리나라는 8권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블로그나 책카페 회원들을 제외하고는 책 읽는 사람을 거의 못 봤는데? 내가 사는 동네가 문제인가? 참고로 우리 동네는 대형 쇼핑 타운이 조성되어 있지만 책은 안 판다. 주말엔 옷 사러 오는 사람만 바글바글할 뿐이다. 우리 가족처럼 찬 바람맞으며 누워있는 옷만 사는 사람들에겐 안 맞는 동네다. 근데 이번 달 말에 대형 서점도 드디어 오픈을 한다. 완전 기쁘다. 가뜩이나 가벼운 지갑을 더 가볍게 하겠지만 넘나 반가운 소식!!

저자인 조 퀴넌이 누구인지 찾아봤다. 생각보다 인상 좋은 아저씨라 깜놀!! 표지 속의 그는 온갖 투덜거림을 달고 사는 그럼프 할아버지보다 더 그럼피하게 생겼는데 말이다. 약간 개구지게 생긴 아저씨가 작가나 책을 마구마구 욕하는 건 넘 좋았다. 이상하게 현실에서 투덜쟁이를 만나면 그렇게 짜증 나고 근처에도 가기 싫은데 책 속에서 만나는 반가운 지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빌 브라이슨 타입인 듯~ 옛날에도 아마존 별점이 있었다고 상상하며 고전에 독자 별점과 서평을 달아놓았는데 완전 재미지다. 완전 내 타입이셨다.

책만 읽고 살면 소원이 없겠네

이 책의 첫 단원의 제목이다. 딱 내 마음이다. 다른 취미도 물론 그렇겠지만 책만큼은 정말 책만 읽으며 살고 싶을 때가 많다. 신작 영화라든가 게임 같은 경우는 어느 정도 섭렵 가능할 거 같은데 책은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 않다. '그래 이 책이야!'를 외치며 보관함과 장바구니에 넣은 책이 가득하다. 거기에서 고심 고심해서 골라 사놓고도 못 읽은 책도 내 책장에 가득하다. 하~

한 번은 어떤 친구가 인간이 읽고 싶은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천년만년 살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브램 스토커가 <드라큘라>에서 전하려 했던 메시지라고 했다.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책벌레 드라큘라 백작이 수만 명 처녀들의 도자기처럼 매끈한 목덜미에서 피를 빨아먹었던 이유는 그가 악의 화신이라서가 아니라 읽고 싶은 책들을 웬만큼 읽을 때까지 오래오래 살 다른 방법이 달리 없어서였다나. 그러나 여태껏 살면서 <드라큘라>를 읽을 시간이 없었던 나는 그 말이 맞는지 확인할 도리가 없다.  ( p.13 )

진짜 그럴듯하다. 몇 백 년 동안 착실하게 영어를 독학한 드라큘라는 더 많은 책을 읽기 위해 그렇게도 열심히 살았다 보다. 내가 무한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면 요즘 50년 대여로 나오는 전자책들을 차곡차곡 다 지를 것만 같다. '까짓 꺼 50년 금방이지~'라고 엄청 좋아하며 말이다.

도서관 서가에서 이 위협적인 타이틀들을 발견할 때면 아직까지도 나는 초조해진다. 그 책들이 꼭 나를 스토킹하고 조롱하는 것 같다. '네 딴에는 제법 똑똑한 줄 알지? 네가 도회적이고 세련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글쎄, 우리가 시종일관 파악을 해봤는데 이런 팩트가 나오더라고. 너는 <가거라, 모세야>, <비극의 탄생>, 혹은 <V.S 프리쳇 선집>을 읽지 않았어. 마담 드 라파예트의 <클레브 공작부인>이나 <프리덤랜드>는 들쳐보지도 않았지. 어이, 누구 눈을 속이려고 해. <율리시스>를 읽지 않았다면 넌 여전히 필라델피아에서 날아온 애처로운 촌뜨기에 지나지 않는 거야. 그리고 그 신세를 영원히 못 면할 테지.  ( p. 65) 

책 읽는 사람이라면 다들 비슷한 건가? 실은 나도 서점에 가거나 도서관에 갈 때마다 저런 느낌을 자주 받는다. 책들이 나에게 "넌 아직 ○○○를 읽지 않았지, 애송이! 그러고도 너를 책 읽는 사람이라고 부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혹은 "넌 그동안 쓰레기들만 읽었어. MSG만 잔뜩 뿌린 것만 먹었지, 진짜 요리는 맛도 안 본 주제에~"라며 힐난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늘 책을 읽으면서도 죄책감 비슷한 게 든다. 그런데 그 책들을 다 읽는다는 건 헤라클레스가 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을 청소하는 일에 버금가는 일이다. 저자가 <율리시스>, <피네간의 경야>, <미들마치>를 계속 언급한다. 읽고 싶고, 읽어야 할 것만 같은데 난공불락의 성 같은 책 들인가 보다. 난 이 책들의 명성을 워낙 많이 들었기에 시도조차 안 하고 있다. 물론 나에게도 그런 책들이 있긴 하다. <토지>, <태백산맥>, <아리랑>이 바로 그렇다. 대하소설을 별로 안 좋아해서 시작조차 안 했지만 꼭 읽어야 할 것만 같은 느낌... 죽기 전에 가능은 할랑가?

오랜만에 내 맘에 쏙 든 독서 에세이를 만났다. 내가 들어보지도 못한 책을 줄줄이 나열해서 나의 무식함에 짜증이 나긴 했지만, 조 퀴넌도 내가 읽은 책 목록 보여주면 비슷한 반응을 하려나? 아무튼 독서 에세이를 좋아한다면 추천, 빌 브라이슨의 책을 좋아한다면 또 추천!!

독서는 인류가 피할 수 없는 것을 지연시키는 방법이다. 독서는 우리가 하늘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방식이다. 이 장대하고 가능할 성싶지 않은 독서 계획이 우리 앞에 줄지어 있는 한, 우리는 숨을 거둘 수 없다. 나는 아직 <빌레트>를 다 읽지 못했으니 죽음의 천사에게 나중에 다시 오라 전하라. 거기에는 우리 모두 영원히 행복하게 살아갈 거라는 희망이 있다. 나 믿노니, 이것이 책이 인류에게 주는 가장 위대한 선물이다. ( p.p. 380~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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