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와 공작새
주드 데브루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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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대여점이 유행처럼 생겨나던 시절에 딱 맞춰서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무럭무럭 자라날 때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타 도시로 전학을, 그것도 여중으로 전학을 오는 바람에 아는 남자애들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때 나 지금이나 책으로 해결을 하는 습관이 있어서 책 대여점에서 로맨스 소설을 발견했다. 그 책의 제목은 <가슴에 핀 붉은 장미>였다. 주드 데브루의 책이었는데, 첫 로맨스 소설의 강렬함에 대여점에 있는 그녀의 책은 모조리 읽었다. 대여점 주인의 취향 탓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대소설이 꽤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난 할리퀸 소설계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다니엘 스틸보다 주드 데브루의 세계가 더 좋았다. 사랑을 글로만 배우다가 현실 사랑을 하면서 그녀의 이름은 서서히 잊혔다. <파이와 공작새>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가슴에 핀 붉은 장미>가 사춘기 소녀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리게 했다면 <파이와 공작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인 <오만과 편견>의 설정을 가져왔다.

<오만과 편견>을 너무 좋아해서 출판사 별로 몇 권이 있다.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콜린 퍼스가 주연한 영드<오만과 편견>도 보고, 나처럼 '미스터 다아시'에 빠진 헬렌 필딩의 <브리짓 존스의 일기>도 읽기도 하고, 영화도 본다. 하지만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는 내 취향은 아니었음. 내가 좋아하는 소설에, 좀비까지 있는데도 그냥 그랬다. <파이와 공작새>는 어떠려나?

밤새 빵을 굽고 이른 아침 주방으로 내려온 케이시는 밖을 내다보니 전라의 남자가 케이시의 오두막 베란다에서 샤워하는 걸 보게 된다. (시작부터 팬 서비스인가?) 경찰을 부를만한 상황이지만 그녀는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환상적인 몸매에 다비드 뺨칠 정도로 꽃미남이었던 거다. (이젠 그가 경찰 부를 각?)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케이시의 핸드폰이 울리고 만다. 그 소리를 들은 남자는 화가 나서 그녀의 집을 들이닥친다. 케이시를 파파라치로 오해한 남자. 알고 보니 그는 케이시가 머물고 있는 오두막의 주인이자 영화배우 테이트 랜더스였던 거다. (이 정도면 매번 전세 갱신하고도 머무르고 싶을 듯... ㅋ) 그에게 사과하러 갔다가 오히려 자신이 평소에 좋아하던 배우인 잭 워스에게 험담하는 그의 말을 듣고 만다. <오만과 편견>처럼 '오만한 테이트'라는 편견에 빠진 케이시. 테이트의 사촌 형 키트의 연극 <오만과 편견> 때문에 다시 만난 케이시와 테이트는 다아시와 엘리자베스를 맡아 연기를 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열고 첫인상이 오해였음을 깨닫게 되는데...

평소에 로맨스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연애세포를 사용하지 않은 지 꽤 오래됐더니(꺽정씨와는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흑) 로맨스 소설이 안 땡기더라. 같은 이유로 오글거린다면서 드라마도 잘 못 본다. 하지만 <파이와 공작새>는 사춘기 시절 좋아했던 작가의 내가 좋아하는 소설인 <오만과 편견>의 설정 덕분인지 금세 읽었다. 원작의 깨알 같은 설정을 조금씩 바꿔서 주조연들에게 뿌려준다. 그리고 주드 데브루의 어른들의 사랑 장면은... 내가 왜 사춘기 시절에 그녀의 책에 빠져들게 했는지 기억하게 해주었다. 제인 오스틴이 그 장면을 읽었다면 먼저 놀라서 책을 집어던졌다가 얼굴을 붉히며 책에 빠져 읽었을 것만 같다. 역시 주드 데브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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