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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전쟁 -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그리고 한반도의 운명
그레이엄 앨리슨 지음, 정혜윤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8년 1월
평점 :

지금은 종영한 <비정상회담>을 재미있게 봤었다. 각국의 청년들이 한국말로 각종 대화하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했다.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 중국 대표로 나왔던 왕심린이 냉동인간으로 있다가 다시 깨고 싶은 연도를 말할 때였다. 그는 '외국어를 안 배워도 될 때'라고 말했던 걸로 기억한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다. 그의 말은 훗날 중국이 세계를 통일해서 혹은 세계의 다시 중심이 돼서 모든 이들이 중국어를 쓸 때라는 말이었다. (한자 까막눈인 나는 그전에 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충격이었다. 그만 중화사상으로 똘똘 뭉친 건 아닐 거다. 아마도 중국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에 동의를 할 것 같다.
잠에 빠져 있는 중국을 깨우지 마라. 중국이 깨어나는 순간 온 세상이 뒤흔들릴 테니.
- 나폴레옹, 1817년 ( p.27 )
지금이 바로 그때가 아닐까? 중국은 잠에서 깨어났고, 자신이 잠든 사이에 옮겨간 세계의 패권을 다시 찾으려고 한다. 그리고 중국인들이 원하는 걸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이가 나타났다. 중국이 잠든 동안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한 미국이 가만히 있을 리는 없다. 중화사상만큼이나 '아이 러브 아메리카'로 똘똘 뭉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내세운 미국이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할리우드에서 중국이 미국에 맞서다가 마침내 전쟁까지 발발하게 되는 영화를 만든다면 시진핑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보다 더 적절한 두 주인공은 찾기 힘들 것이다. 둘 다 자기의 나라가 위대해지기를 바란다. 닮은 점이 많은 두 사람의 갈등이 전쟁으로까지 이어지게 될까?
난 그동안 중국을 짝퉁의 나라, 세계의 공장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책을 읽으며 내가 중국에 대해 단단히 오해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중국을 면밀히 관찰해온 전 오스트레일리아 총리 레빈 러드는 이 나라의 폭발적인 성장을 "영국의 산업혁명과 세계 정보혁명이 300년이 아니라 30년으로 압축되어 한꺼번에 불타 오른 일"이라고 설명했다. ( p.42 ) 우리가 대륙의 oo라고 놀리는 동안 중국은 몇 년이 걸릴 일들을 단 몇 시간 만에 해치우며 무섭게 성장하고 있었다. 또한 중국은 최대 소비국이다. 한동안 치즈값이 인상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동네 작은 피자가게들이 울상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중국 때문이었다. 중국에서 피자를 먹기 시작해서 우리나라 치즈값이 올랐던 거였다. 게다가 공학 분야에서 중국의 청화대는 이미 MIT를 앞질러 세계 최고의 대학까지 되었다. 졸업하는 학생들 수를 생각하면 박사 학위 수여자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다.
저자인 그레이엄 앨리슨이 신흥 강국의 부상으로 기존 패권국의 입지를 위협한 사례 16건 중 12건이 전쟁으로 이어졌고, 4건만이 전쟁을 피한 것을 발견했다. 17번째 사례인 미국과 중국의 관계 또한 75%의 확률로 전쟁으로 끝이 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된다면 한반도는 절대로 안전한 곳이 아니다. 흔히들 말하는 고래 싸움에 등 터진 새우 꼴 나는 건 시간문제다. 얼마 전 중국이 우리나라를 앞마당 삼아 서해 바다와 동해 하늘에 출몰하여 항모 훈련을 했다. 미국에 보란 듯이 힘자랑을 한 것이다. 중국은 여전히 우리나라를 조공을 바치는 나라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데 우리가 다른 나라인 미국을 섬기는 것 같아 심기가 불편한가 보다. 하지만 그들이 대놓고 요구하기엔 아직 때가 아니기에 그들은 기다리는 중이다.
우리나라의 미래가 강대국의 손아귀에 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했다. 저자가 제시한 전쟁 시나리오가 너무나 그럴 듯 하다. 미국과 중국이 붙으면 전쟁터가 될 곳은 우리나라 일 가능성이 가장 크겠지. 하지만 전쟁은 주사위를 굴리는 게임이기보다는 여러 패를 가지고 플레이를 하는 사람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카드 게임에 가깝다고 한다. 우리가 어부지리를 할 가능성은 크게 높아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중간에서 잘만 하면 콩고물이 떨어질지 어찌 알겠는가? 우리나라가 지옥의 한가운데 있는 일만은 없기를...
책은 꽤 두께가 있지만 가독성이 너무 좋다. (저자가 인용한 16건의 사례를 읽는 것으로도 충분히 매력이 있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재미있게 읽어도 될지 걱정할 정도다. 한반도의 운명이 걱정되는 사람이라면 읽어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