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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콩밭에 가 있습니다
최명기 지음 / 놀 / 2018년 2월
평점 :

나는 콩밭 주민이다. 콩밭 외에는 갈 곳이 없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 콩밭에서도 완두콩, 호랑이콩 등 다양하게도 키운다. 몸은 책상에 붙박이처럼 붙어있다 하더라도 마음만은 콩밭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넓고 넓은 콩밭임에도 사람들이 북적인다. "올봄에 콩이 유난히 달죠?"라며 서로에게 콩을 권하고 싱그러운 풀냄새를 맡으며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이다.
그런데 왜 마음이 콩밭에 있다고 하는 걸까? 근데 왜 하필이면 콩밭일까? 찾아보니 내 땅 하나 없는 소작농이 곡식을 직접 심고 싶어도 땅이 없어 아무도 거들떠도 안 보는 척박한 땅에 콩을 심었단다. 콩은 다른 곡식처럼 많은 정성을 들이지 않아도 잘 자랐다. 그렇게 심은 콩이 추수할 때가 되면 누가 훔쳐 갈지, 들짐승이 먹진 않았는지, 혹은 땅주인이 자기 땅에 심었다고 뭐라고 할까 봐 걱정이 된다는 거다. 그래서 온통 마음이 콩밭에 간다는 표현이 생겼다고 한다. 나도 현대판 소작농과 마찬가지라 콩밭이 그렇게 친근했나 보다.
사실 스스로 산만하다고 자책하는 사람 중에는 성격이 명랑하고 밝은 경우가 많다. 한 가지에 몰두하지 못해서 고민인 사람은 다양한 분야에 골고루 재능을 나타내기도 한다. 또한 충동적으로 결정하는 자신이 걱정인 사람들은 누구보다 결단력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새로운 일에 대한 호기심이 넘치기 때문이다. ( p.13 )
혹시 내 마음을 훔쳐본 건가? 아님 콩밭 거주자들은 이런 특성들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건가? 어렸을 때부터 산만하다고 늘 혼났던 나에겐 고마운 말이었다. 어른들은 곧잘 "하나만이라도 잘 해라!" 혹은 "하나만이라도 끝내고 시작해라!"라며 충고 아닌 충고를 했다. 내가 진짜 잘 하는 건 없어도 무난히 이것저것 꽤 한단 말이다. 쳇!
살면서 꼭 둘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할 필요는 없다. 하나를 얻기 위해 꼭 하나를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며, 내가 바라는 삶을 살기 위해서 꼭 안정된 삶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꼭 한 가지만 선택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자. 양쪽의 장점을 모두 취하면서 안정적이고도 자유로운 삶을 그릴 수도 있다. ( p.83 )
양자택일을 해야 할 상황이 가끔 있다. 인생이 모두 '짜장면 아니면 짬뽕'일 이유는 없다. 우리에겐 짬짜면이 있으니까... 꼭 매번 내 인생 최고의 짬뽕(참고로 난 짬뽕이 더 좋아!)을 맛있게 먹을 순 없다. 매번 짬뽕을 주문하고 나면 맞은편 사람의 짜장면이 더 맛있어 보인다. 두 가지를 그럭저럭 해내는 것도 엄청난 재능일 테니...
또한 흔히 산만한 사람은 끈기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기저기에 관심을 주다가 금세 식어버린다는 편견을 얻는다. 하지만 새로운 일에 대한 적극성과 끈기는 독립적으로 작용한다. 활발하고 호기심이 많은데 좋아하는 일에도 끈기도 있기 때문에 스스로 충분히 만족할 때까지, 자신의 기준을 채울 때까지 질리지 않는다.
물론 중간중간 인터넷도 하고, SNS도 하고, 간식도 먹으려 딴짓의 할당량을 채워 넣지만, 그래도 본인이 생각한 만큼의 일은 끝까지 해낸다. 이런 유형의 사람이 완벽하게 일을 끝내기 위해서는 사이사이 딴짓이 그래서 더 도움이 된다. 건물을 짓다 보면 먼지가 날리지 않을 수 없고, 가구를 만들다 보면 톱밥이 생기지 않을 수 없고, 끈기가 필요한 일을 오래 붙들고 있다 보면 딴생각이 끼어들 수밖에 없다. 당신의 하루하루는 딴짓, 딴생각이 있기에 보다 빨리 흘러갈 수 있는 것이다. ( p.178 )
오늘도 회사에서 책상 하나 받아 모니터 앞에서 밭을 일구는 이들에게 위로를 주는 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