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 떠나올 때 우리가 원했던 것
정은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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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 있다.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이 바로 그랬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말이 위로처럼 들린다. 하루라도 주부 파업하면 쌓이는 설거지와 빨래 같은 집안일들, 때론 '다 귀찮아~!!' 미루는 날이 있지만, 마음이 절대로 괜찮지 않다. 아파서 누워있어도 밥 못 챙겨줘서 미안하고, 집이 정리되지 않아서 미안하다. (갑자기 울컥하네. 맘 편하게 아프기도 힘든 전업주부의 삶이란...)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은 럭셔리하게 보인다. 그래서 그 일상을 떠나 여행을 하는 걸까?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떠나는 여행... 생각만 해도 매력적이다.

예전엔 여행지에 가면 가기 전부터 관련 책을 읽고, 인터넷을 검색해서 빡빡하게 일정을 세웠다. 하나라도 놓치면 큰일이라도 날것처럼 말이다. 30분 단위로 짠 일정에 맞춰 부지런히도 움직였다. 평소라면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시간을 보냈을 텐데, 아무도 깨우지 않아도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를 하고 최대한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돌아다녔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피곤함으로 곯아떨어졌다. 그런 여행을 다녀오면 충전을 한 게 아니라 늘 오히려 방전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돌아올 때마다 우리 집이 그렇게도 좋았나 보다. 이제서야 쉰다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그런데 신혼여행을 기점으로 여행 스타일이 바뀌었다. 맛 집이라고 무수히 많이 포스팅된 가게를 갔는데 생각보다 별거 없었다. 누가 맛 집이라고 하니 다들 따라가본 거였던 것 같다. 오히려 현지인들이 줄 서 있는 가게나 몇 번의 인사로 아는 척을 하기 시작한 사람이 추천하는 곳을 갔던 게 훨씬 기억에 남았다. 입맛이 안 맞으면 안 맞는 대로 추억이고, 맞으면 그저 맛나게 먹으면 되는 일. 지도 없이 다니다가 길을 헤매도 그저 즐거웠다. 아마 신혼여행이라는 상황적 즐거움도 한몫을 했겠지만... 여전히 빡빡하게 준비를 하지만(어딜 간다는 게 그저 즐거워서 찾아본다.) 도착하는 그 순간부터 빡빡하게 프린터 한 종이는 구석으로 던져버리고 발길 가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한다. 남들 따라 하는 여행이 아니라 일종의 작은 모험을 시작해본다.

 

 꺽정씨와 한강 불꽃 축제 데이트를 한 적이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진 동호회에서 불꽃축제 출사를 하러 갈 때 꺽정씨를 데리고 간 거지만... 발이라도 헛딛을까 봐 조마조마할 정도로 내 앞에 무수히 놓여있던 고급 카메라와 삼각대들. 하나라도 넘어뜨리면 도미노처럼 다 쓰러져서 날 신용불량자로 만들 것만 같은 포스가 풍기는 삼각대 숲에서 나도 하나라도 건져보겠다고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옆에 있던 꺽정씨는 몇 컷 찍다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카메라에 담지 말고 눈에 담아봐~!" 그제서야 넓은 하늘에 수를 놓듯 터지는 불꽃을 볼 수 있었다. 작은 뷰파인더 안의 불꽃도 물론 아름다웠지만 널따란 밤하늘에 보이는 감동은 없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차가웠던 바람과 싸한 화약 냄새 그리고 따뜻했던 꺽정씨 손의 감촉이 떠오른다. 뷰파인더 뒤로, 액정 뒤로 숨지 않고 맘껏 누렸기에 가능했을 거다. 남들처럼 열심히 사진을 찍지 않아서 마음에 쏙 든 사진은 비록 건지지 못했지만 그날의 기억은 연필로 꾹꾹 눌러쓴 노트처럼 가슴에 새겨져있다. 이 책의 저자는 매번 그런 노트 같은 여행을 하는 것 같다. 무수히 많은 사진이 아닌 한 장 한 장이 소중한 필름 카메라와 나태주 시인의 <풀꽃>의 시처럼 오래 보아 예쁜 풍경들을 그림으로 담았다. 만년필로 그린 그림을 보며 상상으로 색을 입혀본다.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 단출한 가방을 챙겨 하루 종일 걸어도 보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앉아 예술가라도 되는 양 노트를 꺼내 오고 가는 사람들을 그려보고도 싶다. 지금 당장 비행기 표를 예약해서 떠날 수는 없는 노릇, 대신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자의 마음으로 내일은 우리 동네를 여행해봐야겠다. 내일을 위해 오늘 온갖 집안일은 미리 다 해두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훌쩍 다녀올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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