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장의 온도 - 지극히 소소하지만 너무나도 따스한 이덕무의 위로
이덕무 지음, 한정주 엮음 / 다산초당 / 2018년 1월
평점 :

책만 읽는 바보라 간서치라 불렸던 이덕무의 글과 고전연구가인 한정주의 해설이 있는 <문장의 온도>.
지극히 소소한 것들을 관찰하고 따스하게 소박하게 풀어낸 이덕무의 글이 좋았다. 실학자라는 것과 엄청난 다독가라는 것 외에 아는 것이 없었다. 그의 관찰과 깊은 사색이 묻어나는 글을 읽으며 그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어졌다. 달님의 청춘을 이끈 힘이었다기에 더더욱 관심이 간다. 글마다 해석과 원문 그리고 해설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해석을 굳이 읽지 않더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자 까막눈이라 슬펐다. 해석을 읽지 않고 원문의 깊이와 음을 조곤조곤 읊고 싶었다.
세상사에서 벗어난 선생이 있었다. 만 개의 봉우리가 우뚝 솟은 깊은 산속눈 덮인 초가집에서 등불을 밝히고 붉은 먹을 갈아 서책에 동그랗게 점을 찍는다. 오래된 화로에서는 향기로운 향연이 하늘하늘 피어올라 허공으로 퍼져 화려한 공 모양을 만든다. 가만히 한두 시간가량 감상하다가 문득 깨달음을 얻어 웃곤 한다. 오른쪽에는 매화가 일제히 꽃봉오리를 터뜨리고, 왼쪽에는 차가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들린다. 솔바람과 회화나무에 깃든 빗소리는 더욱 정취를 돋운다. (p.17)
눈앞에 그려지는 것만 같은 문장이다. 얼마큼 읽고 쓴다면 이렇게 군더더기 없이 아름다운 글을 쓰게 되는 것일까? 뜻을 고르고 소리를 골라 문장 하나하나를 완성했겠지? 말이 필요 없다. 글이 너무나 예뻤다.
말똥구리는 스스로 말똥 굴리기를 좋아할 뿐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용 또한 여의주를 자랑하거나 뽐내면서 저 말똥구리의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 (p.35)
말똥구리에겐 여의주가 필요 없고, 용에게 여의주가 값진 만큼, 말똥구리에겐 말똥이 귀하다. 저마다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 가지고, 감사하며 사는데 인간만큼은 가치를 돈으로 매긴다. 그리고 나에게 필요도 없는 여의주를 부러워하며 살아간다. 나에게 필요한 것에 감사하며 남을 부러워하지 않고, 또 잘났다고 으스대지 않고, 그저 값지게 살면 될 것을 그게 참 안된다.
농부와 상인의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라 사방을 돌아봐도 사우 한 사람 없지만 묘하게 문장을 깨달아 시원스레 세속의 더러움을 벗은 이가 있다. 이러한 사람은 성불한 자질을 갖추었다고 할 만하다. 그러나 수많은 문헌과 사우에 둘러싸여 있음에도 평생토록 어리석도 거칠기만 한 사람은 장차 어찌할 것인가. 아아! 슬프다. (p.173)
책을 좋아하고 틈틈이 읽는다. 이덕무의 눈으로 본다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문헌과 사우에 둘러싸여 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에 접속해서 내가 원하면 찾을 수 있는 것들은 무궁무진하니까... 그럼에도 여전히 어리석고 실수를 반복하는 게 나라는 인간이다. 알고서 행하지 않는 것 또한 죄일 텐데 왜 매번 제자리걸음인지 속상하다. 아아! 나도 슬프다.
이 책으로 이덕무의 글을 처음 읽었다. 잘 익은 복숭아와 같은 글, 꾸밈이 없는 글이 표지와 참 잘 어울린다 싶다. 하지만 나의 글밥은 그의 감정과 생각을 다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부족했다. 복숭아가 익기를 기다리듯이 내공을 조금은 다져놓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