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프로젝트 - 페미니스트를 위한 여성 성기의 역사 푸른지식 그래픽로직 10
리브 스트룀키스트 글.그림, 맹슬기 옮김 / 푸른지식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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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책을 만났다. 페미니스트를 위한 여성 성기의 역사라는 부제를 가진 살짝 낯 뜨겁고(왜?) 부끄러운(왜?) <이브 프로젝트>. 언제부터 우리는 여성 성기에 대해 부끄러워하게 됐을까? 얼굴에 눈이 달리고, 몸에 팔이 달린 것처럼 그저 몸의 한 부분인데 그걸 없는 척하고 살았다. 남자들의 성기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자랑스러운 것으로 생각했으면서(오줌싸개 소년 동상만 해도 그렇다. 오줌싸개 소녀 동상은 본 적이 있는가?) 여성의 성기는 단어로 말하기조차 꺼려질까?  

<이브 프로젝트>는 인류 문화가 여성 성기를 어떻게 생각해왔는지 거침없이 그림으로 글로 표현한다. 경쾌한 그림에 시원시원한 말투로 재미까지 있다. 여성 성기에 너무나 호기심이 많았던 그러나 오해로 잘못된 주장을 한 남성들의 이야기, 여성 오르가즘에 관한 잘못된 견해, 생리에 대한 오랜 학설 등을 까발린다. 투명한 정조대 따위 벗어버리고 제대로 좀 알아보실까?

여성의 성기가 정말 이렇게 생긴 건가? 과학 책 속의 남성의 성기는 딱히 겉모습을 보여주지 않더라도 어떻게 생겼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지만 여성의 성기의 겉모습은 알 수가 없다. 사춘기가 오기 전까지 남동생의 고추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아도 내 성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전혀 몰랐다. 심지어 거기에 구멍이 있고, 거기에서 아기가 나온다는 것조차 몰랐으니... 나도 관심조차 없었지만 아무도 알려주지도 않았다. 남자들이 하루에 몇 번씩이나 자신의 성기를 보거나 만지는데 여자들은 만지는 것은커녕 보거나 심지어 입에 담는 것조차 금기시된다. 이 글을 쓰는 나도 고추라는 단어는 키보드로 잘 치고 있지만 보지라는 단어는 좀 꺼려진다. 왜?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이다. '여자는 조심해야 한다. 숨겨야 한다.' 고추처럼 나와 있어서 숨기는 것도 아니고 일부러 보려고 애를 쓰지 않는 한 보이지도 않은 걸 숨겨야 한다고 배웠다. 다비드 상 같은 예술품들부터 시작해서 익숙하게 보아온 남성의 성기. 그래서 중고딩 때 바바리맨이 내 앞에 나타났을 때도 놀라지 않았다. '저걸 왜 보여주나?' 생각했을 뿐... 하지만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내 성기를 처음 봤을 때는 엄청 놀랐다. 나에게 프레데터가 있었다니~!! 징그럽고 무서웠다. 꼬꼬마들의 자그마하나 고추가 잠시나마 부러웠었다. 프로이트가 내 얘기를 들었다면 내가 남근 선망이 있다고 하겠지. 프로이트 냥반 끝까지 내 얘길 들어보라구. <컨택트>라는 영화를 보면 지구에 12개의 비행 물체가 온다. 바나나같이 생긴 것이 딱히 위협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도 아닌 인간들은 마냥 두려워하지. 왜냐? 그것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까. 인간은 자신이 어떤 것에 무지할 경우 호기심을 가지면서도 두려워하잖아. 내 성기도 나에겐 그랬다. 여성 생식 기관이라는 그림에는 익숙했지만 겉모습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다비드 상의 고추처럼 자연스럽게 봐왔다면 그렇게 무섭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이제부터라도 알몸 그림에 남자들 고추 그리는 것처럼 선이라도 하나 그어주자. 그 작은 선 하나가 여자들이 자신의 몸에 자신감을 갖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혹시 그런 이유로 지금까지 안 그린 건 어떤 음모가 있었던 건가?

예전에 여성 잡지에서 예쁜이수술이라는 걸 해라는 광고를 보는데 좀 웃겼다. 어떻게 생긴 게 예쁜 거냐고? 눈이 예쁘다, 코가 예쁘다는 건 우리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기준이라는 게 있다. 그런데 여성 성기는 내 것조차 제대로 못 보는데 무슨 기준이 있다는 건가? 그건 또 누가 정하는 건지...

 

한 달에 한 번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편한 친구인 생리. 안 오면 안 오는 데로 걱정되고, 조금만 이상해도 걱정되고, 또 안 오면 짜증스러운 생리. 생리대 광고에선 언제나 상쾌하고 깨끗하고 편안하니 안심하라고 한다. 생리대 위에 청량해 보이는 파란색 액체를 콸콸 쏟아부어도 절대로 흘러내리지 않는다는 광고를 본다. 절대로 생리 때는 입지 않을 것 같은 새하얀 스키니를 입고 자신 있게 엉덩이를 보여주는 모델이 나오는 광고는 생리의 모든 것을 담고 있지는 않다. 왜 생리 때 쾌적하고 깨끗해야 한다고 하는 걸까? 생리는 아주 자연스러운 거다. 바늘에 찔렸을 때 피가 나오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걸 인위적인 걸로 메꾸고 그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포장 좀 하지 말자~ 생리대 광고를 보면서 '이번 생리는 상쾌하겠지~'를 기대하진 않는다고!

이 동영상은 그동안 보아온 수많은 생리대 광고보다 생리에 가까운 것 같다. 여성성을 강조하지도 쾌적함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넘어지고 까지면 피가 나는 것처럼 생리가 자연스러운 일임을 알려준다. 그 어떠한 이야기도 덧붙이 지도 않는다. 맑고 상쾌하라며 강요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생리를 대하는 태도도 그랬으면 좋겠다.

내 몸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사랑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내 몸에 관한 주도권은 나에게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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