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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을 위한 길고양이 안내서
이용한.한국고양이보호협회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1월
평점 :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고양이를 싫어했다. 비 오는 밤에 아기 울음소리 같은 고양이 우는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섬뜩하던지... 게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눈망울, 날카로운 발톱.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양이를 싫어하기보단 무서워했던 것 같다. 엄마 말로는 내가 갓난아기였을 때 도둑고양이가 내가 누워있는 방안까지 들어왔단다. 해코지하려고 하는 걸 엄마가 막았다고 했다. 근데 그날의 진실은 고양이만 알고 있으리라. 아무튼 어렸을 때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며 막연히 고양이를 싫어했다. 하지만 특별한 만남 때문에 난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실습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너무 힘들었다. 언덕에 위치한 계단에 앉아 눈물을 훔치고 있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내게 겁도 없이 다가왔다. 쫓을 힘도 없고, 갸르릉 거리며 내게 머리를 비비는 고양이가 신기했다. 그리고 기분이 훨씬 나아지는 걸 느꼈다. 고양이 상담사는 상담이 끝나자 다른 이를 찾아 유유히 사라졌다. 상담료도 받지 않았던 길 위의 고양이 상담가 덕분에 지금은 고양이를 너무나 사랑한다.
길고양이들은 나에게 위로를 주고 웃음을 주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지금의 나처럼 고양이의 매력을 아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아직도 고양이는 혐오의 대상인 경우도 많다. 우리 집 근처에 고양이들이 자주 다니는 골목이 있다. 가끔씩 영역 싸움을 하는 소리를 들으면 고양이를 좋아하는 나도 '잠 좀 자자~ 얘들아!'라고 말해주고 싶을 때가 있을 정도다. 예전에 엄마 고양이가 아기 고양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걸 봐서 몰래몰래 식사를 챙겨준 적이 있었다. 그걸 본 이웃 주민은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고양이가 자꾸만 새끼 깐다!"라며 핀잔을 줬다. 그 표현에 엄청 놀랬던 기억이 난다. 바퀴벌레도 아니고, 고양이에게 새끼 깐다는 표현이라니! 그분과 말다툼을 해서 피해를 보는 건 고양이라는 생각에 아무 말도 못 했다. 더 몰래몰래 밥을 줬을 뿐... 다섯 아깽이들은 어느 날 세 마리가 되었고(ㅜㅜ), 엄마 고양이와 이사를 갈 때까지 참 많이 속상했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나라에서 길고양이들은 동정과 혐오를 동시에 받는 존재인 것 같다. 길고양이에 대해 잘 알게 된다면 막연한 동정도 혐오도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공존을 위한 길고양이 안내서>는 길고양이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이 담겨있는 책이다.
길고양이, 줄여서 길냥이라도 많이 부르지만 아직까지 표준국어 대사전에는 도둑고양이가 표준어다. 주거형태가 바뀐 요즘에 이제 고양이는 인간들의 부엌으로 들어와 무언갈 훔쳐서라도 먹을 수 있는 기회조차 없다. 인간들이 버린 쓰레기를 뒤지거나 캣맘, 캣대디들이 내놓은 사료들을 먹고 버틸 뿐이다. 길 위에서 팍팍하게 살아가야 할 고양이들에게 '도둑'이라는 누명은 안타까울 뿐이다. 명칭이 바뀌면 사람들의 인식도 조금이나마 바뀔지 모르겠다. 집 안에서 집사들의 사랑을 받는 집고양이들의 수명이 15년 정도인 반면에 길고양이들의 평균 수명은 길어야 3년 안팎에 불과하다. 로드킬부터 혐오 범죄까지 그 이유는 다양하다. 인간의 나이로 따지면 20대 정도인데, 인간들 때문에 요절하는 거다.
캣맘과 캣대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단순하게 밥을 챙겨주는 사람 정도로 인식했다. 그러나 그들의 역할은 어마어마하다. 길고양이를 관리하고 보호하며, 고양이를 혐오하는 사람들과의 마찰도 줄여한다. 그리고 길고양이의 수를 줄일 수 있는 TNR(중성화 수술)도 담당해야 한다. 고양이와 사람 간의 공존을 위해 최전선에서 일하는 그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우리 모두가 길냥이를 입양할 수도, 캣맘, 캣대디가 될 수도 없다. 하지만 같은 공간, 시대를 공유하는 만큼 좋은 관계가 되었으면 한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올바른 시각을 전해주는 <공존을 위한 길고양이 안내서>를 권해본다.
지구에서 고양이를 대하는 당신의 태도가
천국에서 당신의 처지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로버트 앤슨 하인라인(Robert A. Heinlein, 작가) (p.265)
길고양이와
친구가 되는 법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언제나 운이 좋을 것이다.
미국 속담 (p. 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