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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쓰게 된다 - 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
김중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2월
평점 :

블로그 하기 전엔 책을 읽고 나서 덮으면 그만이었다. 때로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났을 때 필사를 하기도 했지만 크게 부담은 없었다. 그런데 블로그에 리뷰를 올리고 시작하고 나의 부족함을 매번 마주한다. 분명 같은 책을 읽었는데 리뷰의 질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욕심이 커갈수록 리뷰는 쓰기가 어려워졌다. 리뷰는 자기만족이지, 난 서평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도 아닌데 내가 쓸 수 있는 만큼만 쓰자~라고 맘을 먹지만 그게 맘먹은 대로 슝~ 비워지는 게 아니다. 그리고 이 책을 만났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라니... 그럼 책 리뷰도 잘 쓸 수 있는 거지요? 더군다나 흑임자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이라니! 믿어본다.
누군가 물어본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냐고.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지만, 가끔 이렇게 대답한다.
잘 쓰려고 하지 않으면
쉽게 쓸 수 있다고.
잘 그리려고 하지 않으면
쉽게 그릴 수 있고,
잘 부르려고 하지 않으면
언제든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다.
나아지려고 하는 마음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오히려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시간이 쌓이면 언젠가는 잘하게 될 테니
지금은 부담을 내려놓고 쉽게 쓰고 그려보자. (p.p. 4~5)
잘하고픈 욕심이 나를 힘들게 했다. 힘 빼고, 맘 편하게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춤을 추는 대로 써볼란다. 그래서 아무래도 오늘의 리뷰는 의식의 흐름대로 쓸 것 같다.
김중혁 작가는 책상 위에 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자신의 도구들을 소개해준다. '장인은 장비를 탓하지 않는다'라고들 하는데 나는 장인이 아니기에 언제나 장비를 탓한다. 저렴한 코바늘을 사고 손가락이 아파서 뜨개질이 힘들었다며 누가 봐도 예쁜 코바늘 세트를 갖추고, 색상이 모자라서 내가 원하는 대로 그림이 안 나온다며 전문가용 수채색연필을 갖췄다. 그런데 작가의 도구들이라니~ 심지어 이 책에 나오는 그림은 김중혁 작가가 다 그렸다는 사실! 모두 아이패드 프로 10.5에 애플 펜슬로 그렸다고 한다. 장비를 갖추고 싶은 내 마음이 설렌다. (<단순한 삶의 철학>에서 나온 지름신 방지 부적을 되뇌어본다. '허영심과 상의하기 전에 먼저 지갑과 상의하라!' 아 눼~ ㅜㅜ) 그리고 키보드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 예쁜 키보드에 살짝 로망이 있는 난 책을 읽다가 키보드 검색을 하고... 글을 써보기도 전에 파산할 지도...
실제로 미술관에서 이보다 더한 걸로, 새하얀 캔버스 위에 가늘고 붉은 줄 하나를 세로로 찍 그어놓은 작품도 봤다.
헤어 실버맨에게 그 붉은 줄 그림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런 건 나도 하겠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안 했잖아." (p.283)
순간 아득해졌다. 뭔가를 이룬 사람들에게 시기 어린 질투를 하며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어!'라고 속으로 생각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나. 그나마 책 리뷰는 블로그에 작성하기에 붉은 물감 정도는 팔레트에 붓지 않았을까 위로해본다. 수많은 선을 연습장에 긋다 보면 언젠가는 새하얀 캔버스에도 그릴 수 있을지 있겠지.
책의 뒷부분은(거의 절반 가까이) 실전 그림 그리기와 대화 완전 정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화 완전 정복은 언어영역처럼 지문이 있고 예상되는 대답을 맞추는 건데, 난 딱 한 문제 맞혔다. (이런!) 수능에서 언어영역이랑 외국어영역은 엄청 잘 봤는데 왜 이런 결과가? 책을 읽는데 이해력이 떨어지고, 관찰력이 부족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 책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서 리뷰 쓸 때마다 골머리를 앓은 게 아닌가 자책도 해봤다. 결론은 그냥 내 맘대로... '사람마다 꼭 같은 걸 느껴야 하는 건 아니니까'라고 애써 위로해보기로 했다.
우리는 글쓰기를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글쓰기 속에서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글쓰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p.137)
무엇이든 쓰게 된다는 작가도 글쓰기가 어렵단다. 종이 위의 문장들은 실재하는 현실과 무척 닮았지만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고... 블로거 흐링과 현실 속의 나와는 다르다. 좋은 사람으로 포장하고 싶고, 그래서 단어를 고르고 골라 키보드를 두드린다. 그러면서 깨닫는 게 있었다. 20대 초반까지의 나는 자존감이 낮았다. 왕따도 경험했고, 나를 가장 사랑한다고 믿는 사람의 말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 시간이 흘러 사랑하는 이도 만나고, 그를 꼭 닮은 아이를 낳고 생각이 변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예전의 나와는 다르다. 책을 읽고, 책에 대해 고민하고, 남은 느낌들을 글로 표현하면서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게 됐으니까. 앞으로 좋은 책과의 인연을 더 만들고, 여운을 적다 보면 더 나은 사람으로 내 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긴다. 물론 그때도 글쓰기는 여전히 어려울 거다. 그래도 무엇이든 써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