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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삶의 철학
엠리스 웨스타콧 지음, 노윤기 옮김 / 책세상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소박하게, 단순하게 살고 싶다. 한편으로는 부유하게 또 바쁘게 살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내 안에는 미니멀리스트와 맥시멈리스트가 늘 싸움질이다. 미니멀리스트는 '제대로 된 거 하나를 사라!'라고 말하고 맥시멈리스트는 '가격도 저렴하니 깔별로 모아보자!'라며 각각의 지름신을 나에게 인도한다. 현실은 '다음에~'를 외쳐야 하지만...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마음이, 지갑이 편하진 않다.(온전히 지름신을 영접한 날도 불편하긴 마찬가지) 마음속의 보관함은 늘 온갖 잡다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로또라도 당첨되는 날에 지를 대기목록에 가깝다.
<단순한 삶의 철학>의 부제는 '세상의 스크루지들을 위한 철학의 변명'이다. 저자인 엠리스 웨스타콧은 가족들이 인정한 구두쇠라고 한다. (변기 솔 거치대를 구입하는 대신 우유팩을 사용한다고 하니... 김생민씨도 울고 갈 정도다.) 그는 단순한 삶의 가치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글로만 채우지는 않았다. 소박함의 철학을 반대하는 주장들도 함께 다룬다.
우리는 단순한 삶을 미덕으로 여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가 소형차를 타고, 혹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존경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소수일 뿐이다. 단순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은 하지만(미니멀리즘, 근검절약을 꿈꾼다) 스타들의 화려한 일상과 그들이 가진 풍요로움을 부러워한다.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 사람들은 현재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소크라테스, 헨리 데이비드 소로, 간디 등이 소박하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나 씨알도 안 먹힌다. 극단적인 예일지도 모르겠으나 '배부른 돼지가 되느니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라는 말이 있는데 대부분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선택하지 않을 것 같다. 나만 해도 '뭐 이딴 선택지가 다 있어?'라고 화를 내 후에 옆에 3번이라 쓰고 재벌 2세를 적을 것 같다. 땅콩만 안 던지면 되는 거 아닌가?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그건 불가능하니 단순하고 소박하게 사는 게 더 쉬운 목표일 듯. 하지만 소비가 세상을 움직이는 만큼 모두들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갈 수 없다. 누군가는 사야 하고, 거기서 나오는 이익으로 누군가는 또 살아간다. 결과적으로 돈을 쓰되 넘치게 쓰는 게 아니라 덜 쓰고, 물건은 더 사용하자는 거다. 그렇다고 오래만 사용하는 것 또한 능사는 아니다. 최신형 에어컨은 전기세 팍팍 잡아먹는 에어컨보다 전기 세도 훨씬 더 적게 나온다. 단순하게 사용하는 것 또한 머리를 쓰고 발품을 팔아야 한다.
책에는 큼지막하게 붙어놓으면 좋을 글귀들이 많다. 한 푼 아낀 것은 한 푼 번 것이다, 입이 호사스러우면 의지가 약해진다. 바보는 잔칫상을 차리고 현명한 사람은 그것을 먹는다, 허영심과 상의하기 전에 먼저 지갑과 상의하라, 지나치게 지루하지 않다면 단순한 인간관계와 단조로운 일상이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한다(쇼펜하우어) 등 지름신을 막는 부적이 꽤 많다. 하지만 자린고비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 소박하면서도 부유하게 누리면서 살고 싶을 뿐이다. 내 지인 중에 하나는 집에 필요 없는 물건이 거의 없다. 자신이 생각해서 조금이라도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혹은 버린다. 서울시 땅값을 생각하면 0.1평이라도 온전히 자신이 즐겨야 한다는 거다. 생각해보면 그 말이 맞았다. 꼭 필요한 걸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닌 물건들이 자리 차지하고 앉아 내게 돌아오는 좁은 공간은 짜증스럽다. 예쁜 몸을 만들기 위해 건강한 재료로 만든 적당량의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처럼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