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위대한 중서부의 부엌들
J. 라이언 스트라돌 지음, 이경아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요리책을 읽는 게 취미였던 적이 있었다. 일단, 영어로 적힌 요리책은 영어 단어를 많이 몰라도 읽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맛깔나게 찍힌 음식들의 사진을 보며 군침을 흘리고, 무슨 맛이 날까 상상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가끔씩 한번 해볼 만하다 싶은 음식들은 상상력을 십분 발휘해서 만들어보기도 했다.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을 만들어보는 건 일종의 작은 모험이다. 때로 그런 나의 모험 때문에 고통(?) 받는 가족들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놀랍게도 예민한 미각을 가진 에바와 달리 미맹 수준이기 때문이다. 소량의 소금과 설탕의 맛을 구분하지 못한다. (덕분에 학창시절 집에서 나의 별명은 '살인주방장'이었다) 반대로 엄마와 남동생은 한번 먹어보면 에바처럼 들어간 재료들을 대략 맞추고 맛도 비슷하게 구현해낸다. 대신 나에겐 뭐든 맛있게 먹는 재능이 있는 걸 위안을 삼아본다.
<위대한 중서부의 부엌들>은 천재적인 미각을 가진 괴짜 소녀가 미국의 최고의 셰프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음식 이름을 모티브로 한 각 장마다 다른 화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에바가 화자인 '초콜릿 아바네로'를 제외하면 에바가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녀를 만난 사람들은 그녀를 알게 되고 에바라는 여운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을 깨닫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없이 추락하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우리도 에바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우린 누군가를 만나고 알게 되면서 그들에게 '나'라는 여운을 남긴다. 너무나 미미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때도 있고, 누군가의 인생에 커다란 흔적을 남길 때도 있다. 우린 서로에게 무의식적으로 혹은 교묘하게 영향을 주곤 하니까. 각 장의 화자들은 릴레이 경주를 하듯이 바통을 이어받아 에바의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그녀의 성장기를 스토커처럼 따라붙어 알고 싶어 하는 나에겐 그런 점에서 좀 아쉽기도 했다.
여덟 개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인상이 깊었던 건 첫 장인 '루페피스크'였다. 요리사이자 딸바보인 라르스 토르발은 이제 생후 4개월이 된 에바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먹이고 싶어 안달이다. 아기에게 다진 땅콩이 들어간 당근 케이스를 먹여도 될지 걱정이 돼서 의사까지 찾아간 라르스. 항정살이 들어간 퓌레는 두 살이 되면 먹이라는 말에 자신의 심장이 찢어질 것 같다고 한 그를 보며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 귀여운 아저씨의 이야기로만 책을 채워도 좋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그런 그가 갑작스럽게 죽었을 때 얼마나 속상하던지... 작가에게 따지고 싶었다. 이런 매력적인 캐릭터를 왜? 왜?
<위대한 중서부의 부엌들>에는 아무래도 부엌들의 이야기라 많은 요리들이 나온다. 레시피를 읽어보는 게 재미있었다. 요리의 이름들만 들으면 나로선 알 수가 없으니... '서코태시'는 처음 들었을 때 감도 못 잡았다. 무슨 사자성어인 줄... ㅡ.ㅡ;; 책에 레시피가 나오지 않은 요리들은 검색을 해보며 읽었다. 배고플 때 읽어서는 안 되는 책 중의 하나였다. 오늘은 나도 라르스와 에바에 빙의해서 건강한 재료를 가지고 정성이란 조리법으로 사랑을 양념 발라 저녁을 준비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