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자라는 문제 - 교양 있는 남자들의 우아한 여성 혐오의 역사
재키 플레밍 지음, 노지양 옮김 / 책세상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투명한 공 안에 갇혀 있는 여성이 표지인 <여자라는 문제>. 페이지마다 그림이 있기에 가볍고 쉽게 읽히는 책이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무겁고 어렵기만 하다.
역사 책에 여자가 없는 건 기분 탓인 건가? 심지어 인류의 진화를 보여주는 각종 그림과 모형들도 죄다 남자들뿐이다. 수컷들은 남자가 되어도 암컷들은 여자가 되지 못한 채 원숭이로 남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종의 기원>을 쓴 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늘 집에만 머무르는 여자들의 성취는 남자들의 성취에 비해선 하잘 것이 없으니 이는 곧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열등하다는 증거라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찰스 다윈의 와이프인 엠마는 밥도 주지 말고 그를 굶겨 죽였어야 했다. 어디서 뜨순 밥 먹고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냐?(설령 빵은 차가웠을지라도 수프는 따뜻했겠지.) 내가 식사 챙겨준 것도 아닌데 다 아깝네. 영국의 비평가인 존 러스킨은 여성의 지성은 발병이나 창조를 위한 것이 아니다, 여성들의 진정한 재능은 칭찬하는데 있다는 헛소리도 했다.
이 책은 교양 있는 남자들 그러니까 역사적으로도 아주 유명한 남자들의 우아하기 그지없는 여성 혐오의 역사다. 사실 왜 여성을 혐오하는지 잘 모르겠다. 남자로 태어나는 것도, 여자로 태어나는 것도 그 어떤 것도 내 의지가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우연히 난자와 성을 배정받은 정자가 만났을 뿐인데... 내가 혐오하는 사람이 여자일 수는 있다. 하지만 여자라서 혐오한다는 말은 결코 아닌 것 같다. 내가 우연히 여자라서 그럴지 모르겠으나 여자를 왜 혐오하는지 모르겠다.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 같은 사람으로 대접을 받고 싶다는 게 그렇게 비난받을 일일까?
우리 집은 유교가 종교인 가부장적인 집안이었다. 남자들만 바글바글한 집에 태어난 귀한 딸이라서 아빠한테 엄청 귀여움을 받았다. 그래도 같은 잘못을 해도 내 앞에는 항상 '여자가!'라는 말이 자주 붙었다. 여자가 뭘? 내가 여자인 게 뭘? 친척들이 모이는 명절에는 더 심한 꼴을 봐야 했다. 여자들은 하루 종일 부엌에서 쪼그리고 앉아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죽은 조상들(심지어 여자들의 조상도 아니었다)을 위해 밥을 하고, 전을 부치고, 그릇을 씻었다. 가부장적인 할아버지들은 따뜻한 아랫목에서 티브이나 보고, 신문이나 읽고, 화투나 치면서 명절을 팔자 좋게 늘어지게 보냈다. 그리고 상이 다 차려지면 그제서야 넓고 따뜻한 거실에 둘러앉아 반찬 개수가 부족하니, 간이 맞니 안 맞니 투덜거렸고, 허리 한 번 펴보지 못한 여자들은 차가운 부엌에서 작은 상에 쪼그리고 앉아 남자들이 남긴 음식을 먹었다. 내가 남자들이 자리한 상에 앉아 있으면 그렇게 눈치를 줬다. '그땐 같은 성씨끼리 치사하게 왜 이러나?'라고 생각할 뿐, 내 성별이 여자라는 걸 인식하지 못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나아졌다고는 하나, 달라진 건 없다. 시댁은 제사만 안 지내고, 겸상을 하지만, 부엌은 여자들의 공간이다. 남자들은 티브이 앞 붙박이가 되어 소파와 한 몸이 되어간다. 커다란 상을 날라야 할 때만 그제서야 남자들의 일(옮기는 것)을 한다. 정말 여자는 열등한 존재라서 부엌에서 찬 손에 물 담가 음식을 하고, 남자들은 우월한 존재라서 소파에 늘어져 있는 걸까?
여성이 열등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주류의 역사가들은 지운 여성들이 일궈놓은 업적들을 역사의 쓰레기통에 넣어버렸고, 불평등은 당연한 거라고 세뇌당해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책은 반어적인 표현을 이용해서 억압된 당시의 여성들을 그린다. 유머러스하게 표현한다고 하나 정말 신나게 웃을 수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화가 났다. '여자가!'가 무슨 접두사 마냥 붙어있던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고, 시댁에 가서 설거지라도 안 하면 불편한 내게 화가 났다. (나도 백 년 손님이라고~!!!) 얇지만 읽는 사람 모두가 불편한 책이길 바란다. 뭔가 잘못된 것임을 알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는 노력하고 있음을 어린 세대에게 알려주고 싶다. 우리의 어머니들에겐 당연했던 것들이, 우리에겐 불편하고, 우리의 딸들에겐 과거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