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양이처럼 살기로 했습니다
스테판 가르니에 지음, 김선희 그림, 이소영 옮김 / 이마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위즈덤하우스에서 서평단 이벤트로 받은 책이다. 생각보다 얇은 책이 도착해서 깜짝 놀랐다. 하긴 무심의 결정판 같은 고양이에겐 이게 더 잘 어울린다. 표지의 고양이는 금방이라도 나를 향해 "야옹~" 소리를 내며 조그맣게 말을 걸 것만 같다.
난 예전에 강아지과에 속한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나보다도 먼저 주위에서 다 알 정도였으니까... 마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꼬리를 상대방 옆에 다소곳이 앉아 사정없이 흔들어댔다. 내 이름만 불러도 눈을 반짝이며 쳐다보고, 부르면 달려나가기 바빴다. 상대방보다 내가 더 많이 사랑했고 그래서 더 많이 아파했다. 내가 가진 패를 몽땅 보여주고 시작한 게임이니 지는 건 당연했다. 어느 날 지인이 연애는 고양이처럼 하는 거라고 말했다. 옆에서 처량하게 울고 있는 내 모습이 참 딱했었나 보다. 간식 하나 못 받아먹은 강아지처럼 풀이 죽어 있었으니... 지인은 좋아할수록 무심한 듯 행동하고, 그 사람이 예상하지 못했을 때 은근히 마음을 드러내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고양이는 늘 그랬다. 아무리 애타게 불러도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가 속상한 날은 어찌 알고 내 곁을 빙글빙글 돌며 쓰다듬는 것을 허락해주었다. 그렇다. 연애는 그렇게 하는 것이었다. 고양이 코치는 나에게 연애를 알려줬고, 이번엔 가진 것 없이도 풍요롭게 사는 삶을 알려주었다.
읽는 동안 나의 고양이었던 '보리'가 떠올랐다. 하품을 하곤 혀 넣는 걸 잊어버려 메롱을 즐겨 하던, 궁디팡팡을 좋아하지만 흥분하면 내 손을 물던,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창밖을 관찰하는 걸 좋아하던, 내가 콤콤한 발 냄새 맡는 걸 좋아하는 걸 알고(이건 좀 변태 같군... ㅋ), 가끔씩은 먼저 발을 내밀던, 머리 감기 귀찮아서 누워있으면 혀로 단장 시켜주던, 골골송 부르는 걸 좋아하던 보리가... 생각해보면 내가 보리를 키운 게 아니라 보리가 날 키운 게 아닐까 싶다. 하루 종일 눈물 속에서 살던 때가 있었다. 밥 먹는 것도 잊고 그저 침대 속에서 웅크리고 울었다. 그때 날 건져준 건 보리였다. 나를 돌보는 법을 가르쳐주었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법을 알려준 것도...
이 책은 저자인 스테판 가르니에가 15년 동안 함께한 자신의 반려묘인 '지기'를 관찰하며 고양이의 행동과 원하는 걸 얻는 방식을 46가지로 정리한 것이다. 고양이에 관한 명언과 고양이 일러스트가 중간중간에 들어있어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나 자신을 잃은 것 같은 사람들에게도 재미있게, 그리고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따뜻한 곳에 자리해서 나른하게 누워있는 고양이처럼 긴장을 풀고 행복하게 사는 지혜가 얇은 책 속에 꽉 차 있다.
부록으로 고양이 지수(CQ)를 평가할 수 있는데, 당장 고양이를 입양해야 하거나, 아기 고양이 상태, 그리고 고양이로 합격으로 나눠진다. 나는 당당히 고양이로 합격점을 맞았다. 알게 모르게 보리에게 고양이처럼 사는 법은 배웠나 보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행복한 거구나... 낮은 점수를 받은 질문들은 관심을 기울이고 내 삶 속에 조용히 스며들도록 해야겠다. 고양이 코치님! 고마워요~
고양이가 추구하는 삶의 철학은 ‘먹기, 놀기, 잠자기, 편안함에 신경 쓰기, 마음에 다는 것만 하기‘라는 몇 단어로 요약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오로지 자신의 행복에만 집중하는 고양이의 삶은 우리의 삶에 비하면 나아도 훨씬 낫다. 이 쾌적한 삶의 방식 덕분에 고양이는 스트레스 없이 산다. 고양이의 유일한 우선순위는 바로 자신의 평안이기 때문이다. 지기의 행동을 지켜보고, 이해하려 노력하면서 나는 또 다른 시각과 또 다른 세계관을 갖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이전보다 성숙한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독자 여러분도 어서 고양이의 시선과 생각, 철학 속으로 들어와 고양이처럼 삶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p.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