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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 1 - 김종광 장편소설
김종광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평점 :

2017년 10월 31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조선통신사 기록물'이 등재되었다. 12회에 걸쳐 조선에서 일본으로 파견된 외교사절단에 관한 자료가 보존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그런데 학교 다닐 땐 국사 시간에 '파견했었다'라고 간단하게 배우기만 했던 것 같다. 통신사들은 공식 사절단으로 문화교류에 영향을 주었다는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다. 내가 너무 관심이 없었던 걸까?
책은 일본으로 떠나기 위해 부산으로 전국의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모이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렇기에 역관, 의원, 격군, 소동, 군관 등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과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누가 주인공인지 알 수 없이 시작하기에 초반에 속도가 잘 나질 않는다. 앞 쪽에 주요 인물들의 이름, 역할과 특징을 정리해두었다면 좀 더 편안하게 책을 읽어나가지 않았을까 싶어 아쉬움이 든다. 소설 속 낯선 이름들을 기억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라도 말이다.(체 게바라 평전을 읽을 때 사람이 이름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지역명이어서 당황했던 기억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본격적으로 배를 타고 일본으로 떠나면 돛을 펼친 듯 속도가 나기 시작한다.
수업시간에 막연히 배웠던 통신사들은 지금처럼 비행기 타고 훌쩍 떠난 것도 아닌데, 그동안 참 간략하게만 배웠구나 싶었다. 500명의 사내가, 300일 동안, 1만 리를 이동하는데 얼마나 다사다난했겠는가. 부산에서 출발하는 사람들이야 그나마 편안하게 출발했겠지만, 함경북도에서 출발한 사람들은 어땠을까. 부산까지 도착하는 것만으로도 큰일이었을 거다. 1년 가까이 집을 떠나는 것이기에 그 의미도 남 달랐을 테고... 그저 문화사절단이라고만 기억하기엔 참 많은 사람이 동원됐다. 총지휘자, 아무래도 많은 인원의 안전을 위해 군인, 요리사, 배를 타고 가니까 사공과 격군, 통역사들, 나팔수들, 깃발 드는 사람, 문인들, 그의 시종들 등 다양한 인물들이 나온다. 영웅호걸이나 권력자가 주인공이 아닌, 책 뒤편에 나온 글처럼 온갖 오소리 잡놈들의 이야기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평범한 소시민인 나 같은 사람들이 전하는 이야기다. 다만 때는 조선이라 여자는 그 축에도 못 들지만... 쳇
통신사들이 문화교류를 위해 갔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조선인들에겐 일본은 여전히 열등한 '왜놈'들이었다. 일본이 서양과 교류하면서 이룩한 신문물을 보면서도, 여전히 낮잡아보는 걸 보며 안타깝기도 했다. 사실 생활수준은 조선보다 떨어졌을지는 모르겠으나, 중국으로부터만 문물을 받아들이는 조선에 비해 다양한 외국의 문물을 접하고 발전시키는 일본의 문화적 수준은 높아 보인다. 조선은 더 적극적으로 응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우리나라의 운명은 지금과는 달랐을까?
이 책은 그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이라고만 생각했던 나에게 300여 일간의 긴 이야기를 알려줬다. 지체 높으신 양반들의 글이 아니라 소동 임취빈(그렇게 이쁘다며...)과 종놈 삽사리(진짜 주인 양반! 사람 이름 그렇게 짓는 거 아닙니다.) 등 낮은 신분의 사람들의 이야기라 더 사람 냄새가 났다. 영웅화할 인물도 없고, 500명의 사내가 일본 가는 이야기라 여자가 없어 사랑타령도 어렵고, 당파싸움과 권모술수도 전쟁도 없어 마음에 들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조선통신사가 일본으로 떠나기 전, 거의 일 년 정도 여자를 안아볼 수 없으니 기생들을 비롯해서 여자들과 회포를 푸는 장면, 대마도나 일본에서 조선통신사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여자들에 대한 묘사는 좀 그랬다. 야한 묘사라서 그런 게 아니다. 나오는 여자도 거의 없는데 그저 남자들의 배꼽 아래를 설레게 하는 도구 정도로만 표현되는 게 싶어 아쉬웠다. 아무리 조선시대였다고나 해도 너무 대상화하는 게 아닌가 싶다. 요즘 어쩌다 페미니즘을 많이 접하다 보니 내가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걸지도 모르겠으나, 어쨌거나 나는 좀 불편했다. 얼마 나오지도 않는 여자들은 조금은 다양하게 그렸더라면 좋았을 텐데...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 <조선통신사>, 살인사건까지 있는!! 그저 국사시간에 잠깐 배운 걸로는 아까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부족한 사람이 대임을 맡게 되었다. 더는 아무도 다치치 말자. 더는 아무도 아프지 말자. 무사히 다녀오자. 그게 우리 돌아가신 선장 형님의 넋을 달래는 길일 테다." 1권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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