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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 - 어쩐지 의기양양 도대체 씨의 띄엄띄엄 인생 기술
도대체 지음 / 예담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라는 제목을 가진 예쁜 노란색의 표지. 제목과 표지가 맘에 들어서 나도 사고, 꺽정씨는 내가 산지 모르고 또 사고... ㅋ 그만큼 매력적이었나 보다.
책의 프롤로그인 <행복한 고구마>가 참 인상이 깊다. 내가 고구마라도 내 주변의 인삼을 보며 인삼이라고 즐거워하고, 또 자신이 인삼이 아닌 고구마라는 사실을 알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건 참 멋진 일이다. 안타깝게도 난 고구마 같은 생각을 하는 날보다는 인삼 같은 생각을 하는 날이 더 많은 것 같다. 주변의 인삼을 보며 확인하고, 비교하고, 안심하고, 우울해한다. 아마 인삼이라고 생각하고 살다가 고구마라는 진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난 어떤 모습일까?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는 행복한 고구마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어떤 느낌의 책인지 알 수가 있다. 읽다 보면 현실 웃음이 팍팍 터지고, 위로가 된다.
저자인 도대체씨의 그림과 글을 보다 보면 공감을 안 할 수가 없다. 이거 내가 쓴 게 아닐까 하는 착각까지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면 물건을 정리 못하는 사람을 물건의 장소를 기억하기보다는 물건과 나,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만났던 기억만이 떠오른다는 거다. 나도 물건에 관련된 기억은 사이코메트리 수준이라 이 옷을 입은 날의 기분, 날씨, 만난 사람과 들었던 노래와 장소가 다 기억날 정도다. 그래서 대청소를 하면 하루 종일 하고도 마무리를 못한다. 물건 하나하나에 담긴 추억을 꺼내 생각하느라 청소할 틈이 없다. 이건 시험 볼 때도 마찬가지라서, 선생님이 입었던 옷, 농담, 책의 페이지 다 기억이 나는데 답만 안 떠오른다. 아이구... 다시 생각해도 너무 짠하네...
그리고 꿈속에서 잘 생긴 연예인과 사귀며, 그가 자신을 깔끔해서 좋아한다는 소리를 듣고 열심히 청소만 하다가 잠에서 깨는 그림은 10년 전의 꿈을 떠올리게 했다. 회식을 하고 온 터라 피곤해서 얼굴도 씻는 둥 마는 둥, 방도 정리하는 둥 마는 둥하고 잠든 날, 꿈을 꿨는데 눈 밑이 퀭한 귀신이 책장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이 방은 먹을 게 참 많단 말이지...'라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너무 놀라 화들짝 놀라 일어나서 귀신이 앉아있던 책장 아래를 보았다. 작은 쓰레기통에 먹다 남은 빵이 들어있었다. 피곤한 몸을 무시하고 정신없이 청소를 했다. 다시는 내 방에 못 들어오겠다는 다짐을 하며 오늘도 치운다.
이 책의 그림과 글은 대단하지 않다. 그림도 단순하고, 글도 간결하다. 그럼에도 공감을 이끌어내고, 위로가 된다. 이 책을 옆에 두고, 우울한 인삼 같은 날 이 책을 꺼내 읽어야겠다.
[리빙 포인트]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생겼다면 ‘뭐, 그건 그 사람이 마음이지‘ 생각하면 마음이 편합니다. p.56
[리빙 포인트] ‘내가 지금 왜 이 짓을 하고 있나‘란 생각이 든다면 ‘이 짓을 안 했을 때도 딱히 더 나은 일을 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침착해지세요. p.105
오랜만에 후배를 만났는데 둘 다 살이 쪄 있었다. 살찐 것에 대해 투덜거리자 그 애가 말했다. "누나, 살면서 뭔가 충분히 가져본 적 있어? 우리, 살은 충분히 가질 수 있어..." p.126
[리빙 포인트] ‘사람들이 비웃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 때문에 시작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면 불필요한 걱정입니다. 어차피 누군가는 늘 나를 비웃고 있답니다. (찡긋)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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