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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픽 미스터리
다비드 포앙키노스 지음, 이재익 옮김 / 달콤한책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버림받은 세상의 모든 원고를 위한 도서관 미스터리!라는 문구에 마음이 동하기는 건 충분했다.
프랑스의 작은 도시의 시립도서관장 구르벡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 책들의 도서관'을 만든다. 수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고 실제로 원고를 가지고 도서관까지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지만 십여 년의 세월 속에 원고들은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했고, 끝내 구르벡도 숨을 거둔다. 한편 파리의 대형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는 델핀은 소설가인 남자친구 프레드와 함께 고향을 찾았다가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구경하러 갔다가 놀라운 소설을 발견한다. <사랑의 마지막 순간들>이라는 제목의 저자는 앙리 픽. 델핀은 곧바로 앙리 픽을 찾기 시작하는데, 그는 이미 이 년 전에 죽은 사람으로 생전에 피자가게를 운영했을 뿐이다. 글자라곤 신문밖에 안 읽던 사람이 소설이 썼다는 사실에 아내와 그의 딸은 당황하지만 그의 책은 곧바로 베스트셀러가 되어 엄청난 인기를 끈다. 루슈라는 한물간 기자는 앙리 픽의 존재가 못내 의심스럽기만 하는데...
책은 하나의 소설이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수많은 작가와 작가 지망생들이 글을 쓰고 또 쓴다. 그러나 모두 그 결과물이 출판되는 건 아니다. 설령 재능을 인정받고 책이 출간되더라도 모두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 또한 아니다. 책이 지닌 이야기보다는 이 책의 제목처럼 미스터리 한 비화라든가, 자극적인 제목 혹은 시선을 확 당길만한 책의 디자인이 더 좌우하는 현실을 꼬집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의 마지막 순간들>이란 소설보다 시골 피자가게에서 글 하나 읽지 않던 앙리가 쓴 책이라는 것에만 열광하던 사람들, 그처럼 자신에게도 언젠가는 재능을 알릴 기회가 올 것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는 작가 지망생들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했다. 책의 내용보다는 출판사들의 마케팅과 홍보, 서점의 굿즈에 관심을 가지고 책을 고르지는 않았는지... 내 재능보다는 그냥 남들이 하니까 한번 찔러보는 것만큼의 노력만 하지 않았는지 말이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수많은 작가들이 처음부터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니었다. 프레드처럼 많은 출판사에 글을 보내고 또 거절당하고, 그렇게 첫 책을 출간했음에도 3년이나 함께 했던 옛 애인은 그러한 사실조차 모르고... 나도 모르는 내 주변의 수많은 프레드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검색하다가 뒤늦게 알게 된 소식인데 이 책이 내년 봄에 영화 촬영에 들어간다고 한다. 로맨스가 될지, 코미디가 될지, 미스터리가 될지 궁금해진다. 다양한 색채가 한데 어우러진 소설이었다.
"그 집에 있는 자기 침대는 어때?" "남자가 한 번도 잔 적이 없는 침대지." "그러면 그 침대에서 자게 될 첫 번째 남자가 나야?" "그래, 처음이야. 마지막 남자도 되었으면 해." "난 말이지, 자기가 대답하는 걸 들을 때마다 그런 식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자기 대답은 늘 아름답고 힘차고 확실하거든." "훨씬 더 멋진 글을 쓰면서 그래. 난 알아. 다른 누구보다 먼저 알아버렸다고." "자긴 정말 멋진 여자야." "자기도 그래." p.36
첫 소설은 대게 모범생의 작품이다. 단지 천재들만이 열등생이라는 평을 받는다. 그들의 작품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곱씹어야만 이야기의 호흡과 감정 표현 뒤에 숨은 암시를 이해할 수 있다. 프레드는 다음 작품은 더 좋아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런 속내를 누구에게도 말한 적은 없었다. 자칫하면 영감이 흩어질 수도 있으니까. p. 38
독자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책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온전히 자기중심적인 흥분을 느낄 수 있는 활동이 바로 독서다. 우리는 책을 읽을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책이 건네는 말을 찾는다. 작가들이 아무리 엉뚱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세상에! 이건 내 이야기잖아!‘라고 말하는 독자는 언제나 존재한다. p.81
멀리서 딸들은 조제핀에게 자주 외출하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라고 했지만 그녀는 대꾸하지 않았다. 왜 가족들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상처를 치유하라고만 하는 걸까? 사랑의 아픔으로부터 회복하지 않을 권리도 있지 않은가. p.98
픽은 언젠가 재능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이 되어 모든 이의 입에 오르내렸다. 자신만을 위해 글을 쓴다는 사람들을 과연 믿을 수 있을까? 단어들은 항상 목적지가 있으며 다른 이의 시선을 열망한다. 자신만을 위해 글을 쓴다는 것은 여행 짐을 꾸렸지만 떠나지 않는 것과 같다.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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