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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의 요리사들
후카미도리 노와키 지음, 권영주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0월
평점 :

나는 전쟁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영화관에서 끊임없이 터지는 폭발물의 소리가 듣기 싫고, 주인공이 아닌 이들은 끊임없이 죽어나가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저 배경으로 소모되는 게 싫다. 게다가 현실 전쟁이라면 난 주인공이기보단 엑스트라에 가까울 테니까... 그래서 유명한 미드 중 하나인 <밴드 오브 브라더스>도 안 보고 현실 전쟁에 가깝다고 극찬을 받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도 안 봤다. 앞으로도 볼 계획은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을 선택한 건 사람을 죽이는 전쟁터에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요리하는 조리병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상 미스터리라니...
때는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 미국 남부의 평범한 가정에서 할머니의 손맛이 듬뿍 담긴 정성 어린 집밥을 먹고 자란 팀(키드)은 특기병으로 전쟁에 참전한다. 그의 전우들인 리더 에드, 까불이 디에고, 조달의 달인 라이너스, 5살 딸이 있는 던힐, 붉은 머리 오하라 등과 함께 전쟁터와 기지에서 기이한 사건들을 마주친다. 필요 없어진 낙하산을 모으는 병사의 비밀, 홀연히 사라진 600 상자의 달걀 분말, 네덜란드 민가에서 벌어진 괴이한 죽음, 죽은 적군들이 유령으로 나타나는 이유... 죽음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소소하게 혹은 충격적으로 미스터리 한 사건을 함께 해결하는데...
군대를 안 가봐서 군대의 구조라든가 명칭에 대해 아는 게 없는데, 딱 내 수준에 맞는 키드의 설명에 단번에 이해가 갔다. 키드의 경우는 미 육군이라는 나라의 제7사단 주, 제101 공수사단 시의 제506연대 동에 거주하며, 제3대대 학교에 다니는 G 중대 반의 일원으로 제2소총 소대 제2분대 줄에 앉고 급식당번이다. 이보다 더 명쾌하게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런 키드와 동료들이 전장에서 요리하는 걸 읽으면서 문득 전투식량이 먹고 싶어졌다. <진짜 사나이>에서 보면 군대에서의 식사와 전투 식량이 꽤 맛나 보였기 때문이다. 꺽정씨 말로는 훈련소에서 먹은 첫 식사에서는 발냄새같이 이상한 냄새가 나서 전혀 못 먹었다고 했다. 입맛이라는 걸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그런 소리를 해서 신기했다. 물론 그 후에는 고된 훈련에 지치고 배가 고파서 발냄새는 전혀 못 맡았다고... 키드처럼 할머니의 레시피 대로 만든 음식이었다면 그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전쟁이라고 하면 총을 들고 적진의 포탄 공격을 피해 가며 달려나가는 장면이 막연히 떠오른다. 한 번도 그곳도 사람이 사는 공간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전쟁을 모르는 평화의 시대에 태어난 축복받은 세대라 전쟁터에서도 밥을 먹고, 똥을 싸고, 잠을 잔다는 당연한 사실을 떠올리지 못했다.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군인들이 더 잘 먹고, 더 힘을 내서 싸울 수 있는 건데... 전쟁터에서 단순히 밥해 먹는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책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조리병이라서 어쩜 다른 이들보다는 전쟁에 적게 투입되었겠지만 그들도 군인이고 삶과 죽음의 교차 지점을 수도 없이 보게 된다.
작가가 30대 일본 여성이라고 하던데, 이런 이야기를 써 내려간 것이 흥미롭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나라 중 하나인 일본의 작가가 미국 군인의 시각으로 독일을 바라본 건 어떤 느낌일까? 유대인의 학살 장면을 썼을 때 정말 아무 느낌이 없었을까? 일본이 저지른 만행들이 떠오르진 않았을까? 2차 세계대전이 이미 종전한 전쟁이었을지라도 우린 아직 그 영향 아래에 살고 있다. 전쟁이 이 땅에서 사라져서 모두가 살기 위해 먹어야 하는 전투 식량이 아니라 즐길 수 있는 요리를 행복하게 먹는 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란다. 하지만 보람은 있거든. 요리도 싸움의 중요한 요소야. 나도 젊었을 때 그런 기분으로 식사를 만든 적이 있어.‘ p.26
새삼스레 생각났다. 불길에 휩싸인 채 낙하산 공수병, 임무를 다하지 못한 채 목숨을 잃은 유도병, 구호소에서 그저 죽음을 기다리던 부상병. 지금까지 정신없이 달려왔기 때문에 몰랐지만 내가 그렇게 될 가증성도 충분히 있었다. 지금 살아 있는 것은 그저 우연히 제비뽑기에서 당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번 뽑을 제비는 백지일까, 아니면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을까? 둥궁이 언저리에 소름이 돕고 몸소리가 났다. p.82
이따금 여기가 전쟁터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것 같았다. 우리가 태평하게 쉬고 있는 이 순간도 전선에서는 누군가와 싸우고 있다. 이 한때의 휴식이 끝나면 이번에는 우리가 누군가를 쉬게 하기 위해 싸울 것이다... 위 언저리에서 싸늘한 게 올라오는 것을 침을 삼켜 도로 밀어 넣고 옆으로 돌아누웠다. p.165
전에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지만 지금은 나도 우리 집은 행복한 가족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사진을 보다 보니 왜 그런지 가슴 뒤쪽 언저리에 껄끄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내가 없어도 가족의 시간은 흘러 나이를 먹어간다. 지프의 사이드미러에 비친, 딴 사람처럼 변모한 내가 이 화목한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 돌아갈 수 있을까." "당연하지, 돌아가지 않으면 안 돼." 던힐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단언했다. 평소답지 않게 말수가 많았다. "가족이 웃을 수 있는 건 렌즈 저편에 네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 네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이런 사진은 영원히 못 찍게 될 거다, 그러니까 살아야 해." p.p.330~331
"안타깝지만 너랑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우리 가족 중에 없겠지. 하지만 여기가 네가 돌아올 곳이고 네 출발점이야. 언제든 말이지." p.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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