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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쓰여 있었다 - 어렸을 적이라는 말은 아직 쓰고 싶지 않아, 일기에는…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7년 10월
평점 :

그녀의 신간이 나왔다. 운좋게도 공감단에 선정되어 그녀의 책을 빨리 만나볼 수 있었다. 맑은 하늘색의 표지와 연한 핑크색의 띠지의 조합이 솜사탕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번 책은 그녀의 그림이 아닌 글로 만났다. 프롤로그에 이 세상에는 자신을 닮은 사람이 최소 세 명은 있다고 했다. 마스다 미리는 그녀의 어머니와 쏙 빼닮고, 호빵맨에 나오는 버터누나를 닮았다고 하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나도 그런 사람이 있어서... ㅋ 내 생각엔 내가 흔한 얼굴은 아닌 것 같은데 닮은 이들이 좀 있어서... 사람으로는 박칼린씨, 영화 캐릭터로는 해리 포터, 만화로는 닥터 슬럼프의 아라레 정도? 마스다 미리만큼 나도 닮은 존재들이 있는데, 이 세상에 나는 나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랑 똑같은 사람을 복제해서 내 앞에 세워둘지라도 난 나 자신과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저 타자로 인식할 뿐... 진짜 나는 하나일 뿐이다. 그 진짜 나도 고정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시시각각 달라진다.
<그렇게 쓰여 있었다>를 읽으며 그녀의 글에는 마흔과 오십 사이, 아이와 어른사이에 있다고 하지만 호기심 많은 소녀를 품고 있다. 여전히 맛있는 디저트에 열광하고(취향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너무나 섬세해서 매력적이다. 나도 요렇게 표현하고 싶건만...), 친구들 앞에서 멋지게 허세를 부리고 싶은데 은근 허당끼까지... 그녀의 일상을 훔쳐본 기분이 든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나면 아줌마라는 단어로 통칭이 되는데 마스다 미리는 그렇지 않아서 여전히 소녀스러운건가? 내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그녀의 삶이 조금은 부럽기도 하다.
그녀의 일기를 읽은 듯한 기분에 내 일기들도 꺼내서 읽어본다. 그리고 <그렇게 쓰여 있었다>와 함께 온 노트에 옮겨보았다. (좋았던 일은 단순하게 쓰고 짜증났던 일은 자세히도 쓰는구나. 이제 그런 버릇은 그만~) 예전 일기라 역시 오글오글하지만 용기를 내본다.

날씨가 좋았다. 걷고 싶어 운동화를 신고, 음악을 들으며 열심히 걷고 또 걸었다.
버스의 창문 밖으로 보았던 가게들 앞으로 발걸음도 해보았으나 나를 붙잡을 수는 없었다.
날씨가 너무 좋았으니까...
얼마나 걸었을까? 우리 동네의 풍경과는 조금 다른 곳에 도착했다.
그제서야 다리가 아프고 목이 말랐다.
근처에 보이는 까페에 들어가 달달한 커피와 더 달달한 컵케이크를 주문했다. 집에서 가져온 책을 꺼내들고 자리에 앉았다.
호사스러울 정도로 완벽한 하루였다. 가을 하늘아! 고마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어. 그건 자신만이 알고 있는, 자신만의 ‘감정‘이었다. 아이들은 어른에게 모든 것을 보고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던 건 몇 거지 감정과 함께 지금의 내가 있다. 그런 먼 옛날을 떠올린 것은,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근처 어린이집에서 운동회 연습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p.60
독립한 지 이래저래 20년이 된다. 가끔은 본가에 머물기도 했지만, 아버지와 엄마의 하루하루는, 내가 알고 있던 시절과는 다른 세계가 되어 있을 것이다. 정년퇴직하신 아버지가 낮에 요리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세계를 나는 알지 못한다. 아버지와 엄마, 두 분이서만 식사를 하는 세계를 나는 알지 못한다. 아버지와 엄마가 매일 아침 라디오체조를 하고 있는 세계를 나는 알지 못하는 것이다. "요즘에 우리는 교자를 폰즈 소스에 찍어 먹어." 저녁 식사 때 엄마의 말을 듣고, 묘하게 쓸쓸한 기분이 들었던 적도 있다. 이미 ‘우리‘에 나는 없는 것이다. p.p.78~79
"이 근처에 맛있는 포르투갈 요리 레스토랑이 있던데." "보고 가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빗속을 뚫고 굳이 그 식당을 찾아가 명함을 받아온다. "있잖아, 우리 다음에는 예약하고 오자." 이렇게 날마다 계속해서 쌓여가는 ‘있잖아, 우리 다음에...‘ 쌓은 것을 다 쓰지 못한 채 우리의 인생은 끝나겠지만, 그래도 쌓을 수 있을 만큼 쌓아두고 싶다.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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