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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 - 서울대생 1100명을 심층조사한 교육 탐사 프로젝트
이혜정 지음 / 다산에듀 / 2014년 10월
평점 :

나는 삼류지방대 출신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한다면 동문들은 울컥하겠지만 어쩌겠는가. 그래도 그것이 사실임을... 물론 이름을 말하면 '아~ 들어는 봤어.'라는 정도지만... 나의 학력은 이렇지만 사촌을 포함한 친척들의 학벌은 후덜덜하다. 스탠포드 대학교, 보스턴 대학교, 서울대학교... 심지어 부모님도 남편도 동생도 나보다 더 좋은 대학을 나왔고 성적이 좋았다. 난 공부를 못한 게 아니라 성적이 안좋았다고 변명을 하곤 하지만 은연중에 자격지심이 올라오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럼 서울대는 뭐가 다른대? 라는 질문과 함께 궁금증이 돋아난다. 더군다나 서울대에서도 A+를 받는다니... 시험 기간마다 돌아다니는 족보같은 비법을 기대하면서 책을 들었다.

얼마 전이 수능이었다. 예준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평소와 다르게 너무나 조용했다. 수능 점수에 영향을 줄까봐 비행기도 지나가지 않고 매일 같이 들려오던 트럭에서 들리는 "~가 왔어요!"조차 숨을 죽였다. 아이들의 1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헛되지 않도록 모든 소음을 통제하는 나라의 풍경이었다. 부모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녀들이 좋은 점수로 좋은 대학(그 최고봉에는 서울대가 있다)을 가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빈다. (우리 엄만 내가 수능 보던 그 때 적어도 서울대를 두고 기도 하지 않으셨음을 안다. 양심적이시니까..) 그렇게 아이들은 공부를 하고 부모들은 기도를 해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가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정작 서울대의 역할이란 또 다른 시험인 대기업 채용과 국가고시를 위한 학원일 뿐이다.
배움의 즐거움이 없는 곳. 교수의 말 심지어 농담까지 노트에 빼곡하게 옮겨적느라 바빠 내가 생각할, 질문을 던질 시간조차 없는 수업 시간... 그 이상 공부를 하면 더 많은 걸 깨닫게 될텐데 다른 과목과 성적을 맞춰야해서 적당히 공부만 하게 된다는 학생들... 그들이 똑똑한 아이들을 대표해서 서울대에 간 것인데 왜 수업 방식은 달달 외우고 필기해야 하는 고등학교와 다를 바가 없을까? 청출어람이라는 말이 통용되지 않는 학교... 교수들의 말과 내 생각이 달라도 좋은 학점을 위해 내 생각 따위는 저 깊이 내동댕이쳐야 하는 시험... 이 책이 말한 것과 같이 서울대가 그런 시스템이라면 굳이 서울대를 가야할 필요가없다. 학문을 위해서가 아니라 좋은 타이틀만을 위해 가야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뭐 나는 들여보내 주지도 않겠지만.. ㅜㅜ)
중고등학교 시절, 난 학교 공부가 싫었다. 아니 배우는 건 즐거웠으나 달달 외워야하는 방식이 싫었다. 책을 찾으면 다 나오는 것을 계산기만 두드려도 다 나오는 답을 왜 암기하고, 풀어야 하는지 이유를 몰랐다. 그리고 아무도 내가 어떤 것을 궁금해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대학교에 입학을 했다. 대학교 수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교수님들은 칠판에 미친듯이 분필로 적으시고 혹은 프린터물을 나눠주셨다. 또 정답만을 배워야 했다. 간혹 조별 과제가 있어서 조원들과 공부를 하고 또 수업시간에 발표를 했지만 역시 책에 기초한, 내 생각의 결과물은 아니었다. 또 정답을 향해 나아가야 했다. 그래도 대학교에 가길 잘 했다고 생각했던 건... 교수님의 연구조교로 있으면서 누구보다 교수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수업시간 천편일률적인 배움이 아니라 학교 근처 꼬치집에서 소주 한 잔에 파전 하나를 사이에 놓고 배운 것이 더 오래 기억에 남고 즐거웠다. 교수님과 주거니 받거니 했던 열띤 토론, 수업시간에는 차마 할 수 없었던 질문들... 어쩜 그 기억들이 좋아서 배운다는 것이, 공부한다는 것이 즐겁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지금 공부를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에게는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성적이 안 좋았노라고 말하는 것일지도...

이 책은 말한다. 교육 제도가 고착화되어 바꾸기 어려울 것 같이 느껴지지만 사실은 고작 얼마 되지 않은 제도라고, 규모가 너무 커서 변화하지 못한다고 변명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고... 다른 나라 교육 시스템을 부러워하며 우리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이리 저리 학원에 뺑뺑이 돌리는 것을 그만두기 위해서라도 한사람 한사람이 이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며 변화를 이끌어야 된다. 많은 이들이 읽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같이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
훌륭한 스승이란 원석을 찬란한 보석으로 가꿀 줄 아는 세공사와도 같은 사람이다. 원석이 아무리 좋아도 훌륭한 세공사를 만나지 못하면 보석이 되지 못한다. 또한 엉뚱한 세공사를 만나게 되면 아까운 원석 자체가 망가져서 볼품없이 전락하고 만다. 과연 서울대는 수많은 원석들을 뽑아 놓고 이들을 찬란한 보석으로 빚어내고 있는가? 오히려 원석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