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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당신들 ㅣ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키에 살고 하키에 살던 베어타운의 사건 이후의 이야기다.
뉴스에서 접하는 수많은 사건들을 떠올려본다. 그저 뉴스를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하나의 사건일 뿐이다. 그리고 종결됐다고 말하면 잘 마무리가 됐으려니 생각한다. 《우리와 당신들》을 읽고서야 그건 그저 나만의 생각이었음을 알았다. 구경꾼에 불과한 나는 다른 볼거리를 찾아 떠나지만 당사자들은 사건의 여운을 평생 가지며 살아야 한다. 다 잘 될 거라고만 생각했다. 현실이 늘 그랬던가?
베어타운에서 벌어졌던 비극... 그날 이후로 케빈은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그가 정신병에 걸렸다는 소문이 번지는가 싶더니 어느 날 아침, 그와 그의 가족은 아무 소리 없이 마을을 떠나버렸다. 동화처럼 이렇게 평화를 되찾았다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케빈의 성폭행이 사실로 드러났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사람들은 복잡한 진실보단 단순한 진실을 원하기 때문이다. 마야를 비난했던 그들의 잘못을 뉘우치거나 위로를 하지 않는다.
그 바보들은 베어타운 아이스하키단이 없어진 이유가 케빈 때문이 아니라 '그 추문'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중요한 건 케빈이 누구를 성폭행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마야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이다. 그녀가 없었다면 그런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남자들이 세상에서는 여자들이 항상 말썽이다. (p. 50)
조재범 사건이 떠올랐다. 만약에 심석희가 금메달리스트가 아니라 평범한 선수가 뛰어난 기량을 가진 코치를 고소한다면? 우리는 누구의 이야기를 더 귀 기울였을까? 어쩜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분란을 일으킨다고 그녀를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환한 데서만 달리기를 하고 말은 하지 않지만 둘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남자들은 평생 어둠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 그건 그들의 인생에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남자들이 어둠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귀신과 괴물 때문이지만 여자들이 어둠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남자들 때문이다. (p. 310)
《베어타운》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마야가 '피해자'로 남지 않고 '생존자'가 되었을 때 모든 것이 자리를 찾았을 것이라는 나의 착각... 트라우마는 남는다. 이제 그녀는 그녀에게 남는 것과 싸워야 한다. 언제까지 싸워야 할지 알 수 없다. 영원히 어두움을 무서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다들 이건 한 사람에게 벌어진 일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건 거짓말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일은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럴 리 없다. 속으로는 우리도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잘못이라는 것을. 우리의 잘못이라는 것을. (p. 414)
책에는 마야의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다. 베어타운에 살고 있는 많은 주민들, 그리고 특히나 아픈 손가락 같았던 '벤이'의 이야기가 아직 그곳에 살고 있다. 마을 어디에서 탕! 탕! 탕! 퍽을 치며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