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탄의 문 1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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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빗방울이 창문을 때리고 그 풍경을 어린 여자아이가 바라본다. 겨울밤 방은 싸늘했다. 엄마는 모직 코트로 아이를 덮어줬다. 다섯 살 생일을 맞은 날 전기가 끊겼기 때문이다. 폐렴이 걸린 엄마는 죽어가고 있다. 아이가 바라보는 창문 너머에는 차통빌딩이라고 불리는 원통 모양의 빌딩이 있다. 그곳은 문제가 많은 건물이라 지금은 비어있다. 그리고 그 끝에 가고일이 앉아있다. 겨울 폭풍우가 치는 밤, 괴물이 내려왔다. 
사이버패트롤 기업인 '쿠마'에서 아르바이트 중인 고타로는 같이 같이 일하던 선배가 실종되는 일을 겪는다. 신주쿠 일대에서 노숙자들이 실종된다는 소식을 듣고 조사하던 중에 함께 실종된 것이다. 사람의 신체를 절단하는 연쇄 살인마의 등장에 걱정이 된다. 고타로는 그를 찾기 시작하고, 단서는 유령 빌딩은 차통빌딩까지 연결된다. 전직 형사 쓰즈키는 차통빌딩의 조각상이 움직인다는 괴소문을 듣고 같은 날 방문하다가 고타로와 만난다. 그리고 거대한 괴물의 모습에 마주치게 되는데...

"집에서 전기와 가스와 수도를 마음껏 쓰고, 삼시 세끼를 챙겨 먹고, 어른은 일하고 아이는 학교에 가는 생활. 그런 건 생각보다 박살 나기 쉬워. 약간의 그릇된 판단에 불운이 겹치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져버리지."
-중략-
"사랑하나 하는 모래알처럼 작아. 이 사회는 무수히 많은 모래알로 이루어진 사막이야. 사막은 모래 한 알 한 알을 일일이 배려해주지 않고, 애당초 배려를 요구할 수도 없어." (1권, p.177)

안타까운 기사를 봤다. 자신의 아이와 함께 바다에 뛰어든 엄마의 이야기였다. 쉽게 말할 수 있다. 죽을힘으로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고... 가려면 혼자 갈 것이지 왜 아이와 함께 생을 져버렸냐고 안타까운 맘에 화도 낸다. 그 엄마도 선택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거다. 그녀의 선택을 긍정하는 건 결코 아니다. 다만 매서운 바람, 차가운 물에 춥지 말라고 담요로 아이를 꽁꽁 싸면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해본다. 세상은 사막처럼 개인을 다 챙겨줄 수가 없다. 하지만 모래알끼리 서로의 안부를 묻고 따스하게 안아줄 수 있다면 이런 안타까운 기사는 조금은 적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여자 연예인 누구 죽어라. 그렇게 쓴 사람은 마음에 안 드는 여자 연예인에게 악플을 달면서 하루의 스트레스를 발산했을 뿐이라고 여기겠지. 하지만 '죽어라'라는 말은 글 쓴 사람의 내면에 남아. 그렇게 써도 상관없다. 써주마,라는 감정과 함께."
그리고 그것은 고인다.
"고이고 쌓인 말의 무게는 언젠간 그 말을 쓴 사람을 변화시켜. 말은 그런 거야. 어떤 형태로 꺼내놓든 절대로 자신과 떼어놓을 수 없어. 반드시 자신도 영향을 받지. 닉네임을 몇 개씩 번갈아 쓰며 교묘하게 정체를 감춰도, 글을 쓴 사람은 그게 자기 자신이라는 걸 알아. 스스로에게서 달아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1권, p.167)

<비탄의 문>을 읽으며 몇 년 전에 꾼 꿈이 떠올랐다. 꿈속에서 말들은 보이진 않지만 형태가 있었다. 낮 동안 셀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나온 말들은 어둠이 내리면 말의 숲으로 모여들었다. 원래 꿈이라는 게 근본이 없기에 때마침 난 말의 숲을 지나고 있었고, 반짝거리는 말을 빈 노트로 잡았다. 그러자 말은 노트 속 글이 되었다. 그렇게 난 말을 사냥하고 꿈에서도 책을 읽었다. 꿈에서 깬 후에 여운이 꽤 오래갔다. 아직도 기억이 남는 걸 보면 말이다. 말은 뱉은 후에 형태가 남지 않기에 쉽게 할 때가 많다. 게다가 난 낯설고 긴장하면 말이 많아지는 타입이라 말실수할 때도 꽤 있다. 그런 날은 이불킥 예약이다.
인터넷상의 글 때문에 크고 작은 일이 많이 생긴다. 재미 삼아, 아니면 그저 하루의 스트레스로 누군가에게 못된 말을 던진다. 그 사람에겐 그저 작은 돌멩이일지라도 다른 사람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 아니다. 폴 오스터가 그랬다. 한계를 넘으면 지푸라기 하나만 더 얹어도 낙타 등뼈가 부러진다고 했다. 내가 작은 지푸라기라고 가볍게 여길 수 있는 말이 등뼈를 부러뜨린다.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한 말은 내 귀가 듣고, 내 손이 한 행동은 내 눈이 본다고 했다. 나 자신은 속일 수는 없다.

늘 그렇듯, 미미여사의 글을 정신없이 읽어나가게 만든다. 판타지와 사회파 미스터리의 조합이라 처음엔 고개가 갸우뚱했다. 진짜 괴물이 나온다고? 하지만 읽다 보니 바로 엄지척을 외치며 2권까지 단숨에 읽어버렸다. 역시 미미여사님이다. 더군다나 동화책 <착한 괴물 쿠마> 이야기도 나와서 더더욱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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