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걸어도 나 혼자
데라치 하루나 지음, 이소담 옮김 / 다산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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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말한다. 여자들에겐 남자들처럼 의리 같은 우정은 어렵다고... 그건 살면서 끊임없이 생활권이 바뀌기 때문일 거다. 중고등학교 때 절친도 대학교가 달라지면서 뿔뿔이 흩어지고, 대학을 졸업해서는 회사로, 또 아이를 낳고 생활이 달라지니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적어지니 말이다. 퇴근 후 함께 맥주를 마시며 사회생활의 힘겨움을 토로할 수 있는 우정을 나누기는 어렵지만 멀리 있어도 꾸준히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우리가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타인은 결코 아니다. 밤톨군을 낳고서는 육아 동지들과, 꺽정씨의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게 되었다. 그들과 울고 웃고 시간을 보내다 보니 벌써 십 년이란 세월이 훌쩍 넘었다. 하루하루가 겹쳐 우리에게도 의리 같은 우정이 생겼다. 여자의 우정을 무시하지 말지라.

서른아홉 살 무직인 유미코는 남편과 별거 중이다. 그녀는 시어머니이자 자수 선생님인 마츠에씨의 소개로 이름은 예쁜 '메종 드 리버'에 살고 있다. 유미코의 옆집에는 '이 사람이다'싶은 짝을 만나고 싶은 카에데씨가 산다. 유미코가 카레를 만든 날, 카에데씨의 중얼거림으로 둘은 친해졌다. 둘은 실종된 유미코의 남편을 찾아 작고 먼 섬으로 여행하기로 하는데...

언제든 갈 수 있다고 믿었다. 언제든,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믿었다. 동시에 어디로도 갈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자만하면서 그 무엇도 될 수 없다고 두려워했다.  (p.96)

열네 살의 유미코와 열네 살의 나도 다르지 않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믿었고,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은 잠재력은커녕 잠과 재력도 부족하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이런 건가? 흑흑. 하지만 유미코와 카에데는 서로가 있었다. 모든 걸 공유하고 이해하진 않는다. 그저 옆에서 묵묵하게 삶을 응원할 뿐이다. 서로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할 때만 말이다. 배려랍시고 어설프게 오지랖 떠는 일도 하지 않는다. 우리에겐 이런 우정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함께 여행을 왔지만 늘 함께 하지 않아도 부족함이 없는 관계가 말이다.

소설은 동화책이나 로맨스 영화처럼 왕자님을 만나거나, 사랑을 재확인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서로에게 마냥 의지하는 일도 하지 않는다. 부족하나 그것으로도 충분히 멋있었다. 유미코와 카에데도 멋있었지만 내가 가장 좋았던 인물은 유미코의 시어머니, 마츠에씨였다. 단순한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가 아니라 둘 사이에 우정이 느껴졌다고 할까? 나도 그런 시어머니가 되고 싶다.

나도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내 삶은 분명 아름답지 않다. 수도 없이 틀리고 남에게 수도 없이 상처를 주고, 과거에 저지른 죄와 부정을 불에 태워 용서를 받으려 한다. 그렇지만 옳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게 산다는 사실을 아는 나는 적어도 다른 사람이 진심으로 원하는 대상을 가치 없다고 비웃거나 부정하지는 않겠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고 남을 비웃는 것은 비겁하다.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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