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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크맨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7월
평점 :

한 소녀의 머리가 황갈색 낙엽 더미 위에 놓여 있었다.
아몬드 모양의 눈은 차양처럼 우거진 단풍나무와 너도밤나무와 떡갈나무를 올려다보고 있었지만 나뭇가지 사이를 머뭇머뭇 뚫고 숲속 땅바닥 위로 금가루를 뿌리는 햇살을 쳐다보는 건 아니었다. 검은색으로 반짝이는 딱정벌레들이 동공 위에서 종종걸음 쳐도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어둠 말고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 근처에서는 핏기 없는 한쪽 손이 도움을 청하려는 듯, 그도 아니면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얻으려는 듯 낙엽의 장막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손은 도움도 위안도 찾을 수 없었다. 시신의 나머지 부분은 손이 닿지 않는 숲속의 다른 은밀한 곳에 여기저기 숨겨져 있었다. (p. 9)
숲에서 한 소녀의 시체가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렇게 흥미로운 시작이라니... 매미만 온종일 우는 무더운 늦여름에 딱 어울리는 소설이다. 시체는 머리 부분을 제외하고 다른 부분은 다 발견된다. 사건은 1986년 앤더버러라는 작은 마을의 축제에서 시작된다. 열두 살의 에디는 뚱뚱이 개브, 메탈 미키, 호포, 니키와 들뜬 마음으로 축제를 간다. 거기에서 댄싱 휠의 축에 달린 회전 링이 부러지며 눈에 띄던 미녀(댄싱 걸)은 크게 사고를 당한다. 방학이 끝나면 새로 부임하는 선생님 핼로란(백색 인간)을 도와 응급처치를 하고, 둘은 영웅으로 불린다. 에디 패거리들이 분필로 낙서하며 자신들만의 표식을 만든다. 그들만의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던 중 미키의 형과 그의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던 에디를 핼로런 선생님이 구해준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뜻이야. 나쁜 짓을 하면 결국에는 그게 되돌아와서 네 엉덩이를 물게 되어 있다는 거지. 저 아이는 언젠가 대가를 치를 거다. 믿어도 돼." (p. 111)
핼로런 선생님의 말대로 나쁜 짓을 하던 미키의 형은 그만 물에 빠져 죽고 만다. 그런데 그녀가 숲에서 토박 시체로 발견되었다. 시간은 30년이 흘러 2016년이 되고 에디와 친구들은 일명 초크맨이라 불리던 살인자의 표식이 있는 편지를 받게 되는데...
"절대 예단하지 마." 예전에 아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예상하고 단정 짓지 말고."
내가 멍하니 쳐다보자 아빠는 말을 이었다. "이 의자 보이지? 네가 보기에는 이 의자가 아침에도 이 자리에 있을 것 같니?"
"네."
"그럼 너는 예단하는 거야."
"아마도요."
아빠는 의자를 들어서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의자의 위치가 절대 바뀌지 않게 하려면 바닥에 붙여놓는 수밖에 없어." (P. 374)
사실 추리소설은 예단하는 재미로 읽는 것이다. 읽으며 사건의 본질을 파헤치려고 하고,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려고 하는... 단순한 나는 매번 그렇게 예단해서 뒤통수를 신나게 맞는 재미에 추리소설을 읽는다. <초크맨>은 도무지 범인이 누구인지, (범인이었으면 하는 사람은 있다.) 왜 그 사건이 일어났는지 마지막까지 짐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초크맨>은 저자의 데뷔작이라 하는데 흡입력이 장난 아니다. 스티븐 킹이 왜 강력 추천했는지 알 것 같다. <초크맨>은 영국이 배경이지만 스티븐 킹의 소설과 느낌이 크게 다르지 않다. <스탠 바이 미>와 <그것>의 느낌을 공유하는 듯하다. 스티븐 킹의 소설은 앞뒤가 제법 잘 물려있는 허구의 세계라고 한다면 <초크맨>은 느슨하게 묶인 여러 갈래의 실타래 같은 현실의 세계에 조금 더 가깝다. 완벽한 건 현실에선 있을 수 없으니까... 작가의 차기작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