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를 그만두는 날
가키야 미우 지음, 고성미 옮김 / 레드박스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10년 전쯤에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소설을 읽었다. 결혼을 하기 전에 읽었던 터라 그저 재미있는 발상이라고만 생각했다. 결혼을 하고서야 알았다. '비독점적 다자연애' 이런 말 따위는 던져두고 여주인공인 인아는 보살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한 남자와 결혼했을 뿐인데 나에게 다른 세계가 열였다. 무려 시월드... 시월드는 내가 상상한 그 이상이었다. 그런데 또 결혼해서 시월드를 하나 더 가지겠다고? 그렇다고 이 책이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이란 제목만큼 사이다인 건 또 아니다. 며느리란 자리는 내가 하고 싶은 말 또박또박 할 수 없는 자리가 결코 아니니까. 사위는 백년손님이라는데(그것도 옛말이고 요즘은 장서갈등이 장난 아니라지?) 아직도 우리나라는 며느리는 무보수 백년종년쯤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그나마 옛날보다는 나아졌다고 하지만... 우리가 시부모가 되는 시대가 되기 전에는 반드시 없어지기를...

남편이 죽었다. 도쿄로 출장을 갔다는 사람은 나가사키 시내에 있는 호텔에서 뇌졸중으로 죽었다고 한다. 평소에도 무정했던 남편이었던지라 가요코는 그리 슬프지도 않았다. 자식이 없어 적은 액수의 보험금, 남편의 사망으로 갚지 않아도 된 주택 융자금, 그리고 무가지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동안 벌 수 있는 월급이 가요코에게 남았다. 처음에는 그런 줄만 알았다. 하지만 곧 시어머님은 가요코의 집에 남편의 불단을 주문해 놓고 수시로 그녀의 집에 들락날락 거린다. 게다가 남편에게 분향을 하고 싶다는 이유로 사오리라는 청순한 여자가 집에 와서 기도를 한 후에 기념으로 남편의 유품인 잠옷을 가지고 싶다고 한다. 가요코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많은 시어머니, 치매 증세가 보이는 시아버지, 히키코모리인 시누이까지 가요코는 떠맡을 이유가 없었다. 의무만 남은 며느리 자리를 말이다. 가요코는 인척관계종료신고서를 제출하기로 하는데...

남편이 죽고 나서 나는 이제 누구의 아내도 아니 자유의 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다카세 집안의 며느리'인 것이다, 그것도 남편이 살아 있을 때보다 더 시집살이를 하면서... (p.104)

남편이 살아있을 때는 우아하고 본받고 싶은 시어머니가 남편이 죽고 나선 집착의 화신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나마 가요코의 시어머니는 남편이 살았을 땐 시집살이도 별로 안 시킨 것 같던데... 에휴. 말을 말자. 난 안 봐도 뻔하겠구나. 난 그동안 시댁의 호구였다. 내가 약간 츤데레 스타일이라 툴툴거리면서도 어머님 혼자 명절 준비하실까 봐 명절 연휴 전날부터 가서 일을 했더랬다. 그래도 늘 시부모님은 당연하게 생각하셨다. 이번에 어머님께서 수술하셔서 옆에서 병간호를 했다. 그때 어머님의 민낯을 볼 수 있었다. 난 그저 든든한 호구였던 거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내 탓을 하셔도 어머님이 속상하셔서 그러려니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너무 억울하고 속상했다. 그래서 대학교 때 배웠던 i-messege를 시전했다.

"네가 어떻게 느꼈는지, 얼마나 싫었는지, 무엇이 슬펐는지, 그런 것들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말하면 돼. 과장해서 말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주눅 들어서 기어드는 목소리로 말할 필요도 없어. 상대에게 휘둘리지 말고 너만의 세계에서 말하면 되는 거야." (p.226)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부모에게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동안 많이도 참아왔었다. 친정 엄마는 내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 엄마가 욕을 먹거나 칭찬을 들으니 잘 해라고 늘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 결과가 고작 이거라고 생각하니 화가 솟구쳤다. 가요코는 며느리를 그만 두기 위해 인척 관계 종료 신고서를 제출했고, 난 그런 서류가 있는지 몰라(우리나라도 있나?) 며느리를 그만두기 위해 아내도 그만 둘 수 있다는 마음으로 그동안 쌓였던 걸 얘기했다. 참고 살다가 나중에 밤톨군의 아내에게 내 한풀이를 늘어놓고 싶지는 않으니까...

사람과 사람이 만나 가족을 이루는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인데 왜 이런 상하관계가 생겨야하는지 모르겠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한 사람을 믿고 그 사람과 결혼을 했다는 것 뿐인데 말이다. 나 뿐이 아니라 오늘도 며느리라는 자리 때문에 한숨 쉬고 눈물 흘리는 사람을 많다. 시집 살이 이야기를 들으면 막장 드라마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그나마 나는 할 말은 하고 살아야한다고 생각하지만 효자 아들과 산 우리 엄마는 그조차도 못했다.

어렸을 때는 며느리 자리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난 엄마의 시댁 식구들 중 한 사람이었으니까... 난 만나 뵌 적 없지만 증조할아버지는 후처를 보신 탓에 나에겐 아빠 보다 젊은 할아버지들이 몇 분 있다. 덕분에 명절엔 촌수 낮은 엄마와 작은엄마들은 좁은 부엌에서 허리 한번 펴보지 못하고 하루 종일 제사 준비를 하는 동안 나를 포함한 같은 ○씨들과 젊은 할머니들은 지루해하며 시간만 때웠다. 그땐 촌수가 낮으니, 그리고 며느리니까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다. 엄마의 부엌데기 시절은 아빠가 암 선고를 받고서야 멈출 수 있었다. 대신 엄만 부엌 대신 아빠 병실 옆을 지켜야 했지만... 아빠가 돌아가시고 시간이 흘러 엄만 할아버지들 중 한 명에게 내 동생 결혼 소식을 알려드리려고 전화를 거셨다. 그때 전화에서 들렸던 할아버지의 호통소리. "자네가 사람이가?" 이게 무슨 말인지? 할아버지는 엄마가 아빠 돌아가신 후 명절에 와서 일을 안 한다고 소리를 지르는 거였다. 순간 눈이 돌아버렸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엄만 그 젊은 할아버지들의 며느리도 아니었고, 할아버지보다도 엄마 나이가 더 많았는데 엄마에게 반말로 지껄이는 걸 참을 수 없었다. 맨날 양반 타령하던 양반들이 예의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엄마의 전화를 빼앗아들고 할아버지에게 엄마가 그동안 참아왔을 소리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다시는 전화 같은 거 하지도 않을 거고 하지도 말라고 소리 지르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엄마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변했지만 표정은 오히려 좋았다. 그렇게 엄마의 시댁 인연은 내가 끊어드린 게 되었다. 엄마에게 미안했다. 내가 며느리가 된 후에도 엄마는 이 집안 며느리였다니... 일본처럼 인척관계종료신고 같은 게 있다면 진작해드렸을 텐데 죄송스러웠다.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 리뷰를 써야하는데 개인사만 계속 떠오른다. 아무래도 며느리라는 단어에 너무 감정이입이 됐기 때문일거다. 가족간에 있어서 절대 선인도 절대 악인도 없다. 이 소설도 그렇다. 다들 자기 입장이 있을 뿐... 나도 내 입장을 고수하기 위해 이번 명절엔 시댁을 이 책에 가져가봐야 하나 살짝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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