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비주얼 클래식 Visual Classic
오스카 와일드 지음, 박희정 그림, 서민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란 책을 처음 접한 건 초등학생 때였다. 내 걸음으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던 도서관에서 명작 동화(?) 같은 걸로 접했더랬다. 그때 <장발장 이야기>도 함께 읽었는데 나중에 <레미제라블>을 읽고 원작과의 괴리감에 깜짝 놀랐었다. 명작 동화가 아닌 소설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으려고 책을 넘겼을 때 걱정도 됐다. 그럼에도 이 책을 위즈덤하우스 버전으로 읽은 건 다 만화가 박희정의 그림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러스트가 없어서 슬펐다는 거... 한 권이 다 만화책으로 나올 거라고 기대는 안 했지만 그래도... 그래도...

지나가던 사람도 길을 멈추고 돌아보게 만든다는 절세 미남 도리언 그레이. 바질 홀워드란 화가가 그의 아름다운 모습을 초상화로 남긴다. 도리언은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 아도니스처럼 한눈에 반해버리고 만다. 아름다운 자신의 초상화를 보며 영원한 아름다움과 젊음을 갈망하며 자신의 영혼과 맞바꾸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고 만다. 헨리 워튼 경의 쾌락주의적 인생관에 영향을 받은 도리언은 자신의 본성을 완벽하게 실현하기로 한다. 타락한 삶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결같이 순수한 아름다움을 지닌 얼굴을 가진 대신 그의 초상화가 추악하게 변하기 시작하는데...

"얼마나 서글픈 일일까요!" 도리언 그레이는 여전히 자신의 초상화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이렇게 중얼거렸다. "얼마나 서글픈 일일까요! 나는 점점 늙고, 추하고, 끔찍해지겠지요. 하지만 이 그림은 언제까지나 젊음을 간직하고 있을 거예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유월의 오늘 모습 그래도 남아 있을 거예요... 아, 그와 정반대가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는 언제까지나 젊은 모습 그대로 남아 있고, 그림이 나 대신 점점 나이를 먹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게만 된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난 무슨 짓이든 할 거예요! 그래요, 그럴 수만 있다면 온 세상을 다 뒤져서라도 무엇이든 가져다 바치겠어요!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내 영혼이라도 바칠 거예요!"  (p.58)

그동안 역사 교과서 속 반가사유상의 목과 가슴에 있는 주름을 목걸이로 알고 지냈었다. 얼마 전 가벼운 옷차림으로 거울 앞에서 나를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다. 반가사유상처럼 나도 목걸이를 여러 개 하고 있던 거다. 나이에 비해서 목주름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나 보다. 갑자기 발견한 세월의 흔적에 울컥했다. 다들 얼굴은 속여도 목은 못 속인다고 하던데 나도 나이를 차근차근 먹고 있었다. 매일매일 노화의 단계를 느낄 수는 없다. 노화는 상승선이 아니라 계단식으로만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나이를 먹는다는 게 당연한 것임에도 매번 충격을 먹는다. 연예인들은 애를 낳고도 그대로고 나이가 50이 넘어도 나보다 어려 보인다. 그들에겐 외모가 재산이기에 관리하는 게 당연하지만 나만 혼자 나이를 먹는 것 같아 서글프기만 하다. 평범한(아니 그보단 조금 더 예쁜, 글인데 확인도 못할 텐데 어쩌랴? ㅋ) 나도 나이를 먹는 게 슬픈데 경국지색의 미모를 갖춘 도리언이라면 더더욱 슬플 거다. 게다가 매번 사진으로 접할 수 있는 것도 아닌 시대에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가 그려진 그림을 보면 더더욱 슬펐을거다. 요즘에 태어났다면 악마에게 영혼을 바치는 대신에 값비싼 화장품에, 피부과에, 피트니스에 영혼 대신 돈을 바쳤겠지. 이래저래 젊음을 유지하는 건 힘든 일이다.

젊음을 유지하는 건만큼은 아니지만 이 책도 읽기가 쉽지는 않았다. 줄거리는 엄청나게 단순하지만 읽기가 힘들었다. 무엇보다 헨리 워튼이 얘기할 때마다 너무 짜증 났다고!! 아름다움이 최고인가? 물론 아름다운 얼굴로 태어나면 10억을 가진 통장을 손에 쥐고 태어나는 거라는 건 동의하지만(꺽정씨가 자긴 얼마를 가지고 태어난 거 같냐고 물어보길래 마이너스 통장이라고 대답해줬다. 거울도 안 보나? 흥칫뿡!) 아름다움이란 세월의 흔적에 지워지고 만다. 잘생긴 총각이 잘생긴 아저씨가 되기도 하지만... (역시 아름다움이 최고인 건가?) 도리언이 소년이 아니라 청년이었다면, 자신의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었다면 헨리 워튼의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쯤 시원하게 웃고 넘어갔을 텐데...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에 헨리 워튼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여자는 예뻐야 해, 예쁘면 됐어, 예쁜 게 착한 거야.'라며 이야기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아름다움에 조금만 덜 집착해도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 도리언이 젊음과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것으로 불행이 시작됐으니까...

책을 읽고 나니 뮤지컬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보고 싶어졌다. 지금도 공연하나? 기왕이면 도리언 그레이는 맷 보머가 했으면... 내 눈엔 맷 보머가 가장 잘 어울리는 듯. 오스카 와일드도 인정할 지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