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착각 - 왜 우리는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가
스티븐 슬로먼 & 필립 페른백 지음, 문희경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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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아주 지혜로운 어르신이 있었다. 무엇이든 물어만 보면 뭐든지 대답한다는 노인이었는데 그에겐 아주 긴 수염이 자랑거리였다. 어느 날 귀여운 꼬마가 그에게 질문을 한다. "할아버지는 수염을 이불 안에 넣고 주무세요? 빼고 주무시나요?" 노인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대답을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수염을 이불 안에 넣어봐도 빼보아도 불편했다. 그래서 그날 밤은 잘 수가 없었다.

낯익은 물건, 늘 접하고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작동하는 물건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놀랍도록 개략적이고 깊이가 얕다.  (p.38)

매일 반복하는 것도 의식하는 순간 머리가 새하얗게 되는 경우가 꽤 있다. 어느 날 난 어느 쪽 신발부터 신는가 궁금해지자 왼쪽도, 오른쪽도 불편해지는 걸 경험했다. 생활 습관뿐만 아니라 지식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전거가 무엇인지 알고, 어떻게 생겼는지도 안다. 하지만 막상 그려보라고 하거나 작동 원리를 설명해달라고 하면 자신이 생각보다 얼마나 조금 아는지 깨닫고 매우 놀라워하게 되는 경험을 하곤 한다. 심지어 프로 사이클 선수들도 마찬가지라고 하니...

1980년대에 랜다우어라는 사람이 컴퓨터 메모리 크기를 측정하는 척도로 인간이 지닌 기억의 크기를 측정하고자 했다고 한다. (내 컴퓨터의 용량은 500GB인데 그것도 모자라서 2TB 외장하드도 사용한다.) 랜다우어는 성인의 평균 어휘량을 측정해서 그만큼의 정보를 저장하는데  몇 바이트가 필요한지 계산하는 식이었다고 한다. 그 결과는 0.5GB였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도 접근하지만 결과는 역시 1GB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컴퓨터의 저장 용량에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다. 한 마디로 인간은 지식 저장소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인간의 지식은 얕을 수밖에 없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책을 잘 이해할 거라는 착각을 했더랬다. 예전보다 더 많은 책을 읽었으니 그만큼 지식의 폭이 넓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나의 알량한 자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유발 하라리의 추천사가 있으니 무조건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호모 사피엔스>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해서 내가 유발 하라리가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저자들이 예시로 든 것들에 대해 나 역시 모르고 있음에 당황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점점 쪼그라들었다. '이런 똥 멍청이 같으니라구!'를 외칠 수밖에... 이 정도면 내가 이 책을 쉽게 이해할 거라는 착각이 아니라 이 책의 원제인 망상(Knowledge Illusion) 수준이었던 거다. 그동안 남의 머릿속에 든 지식을 활용할 수 있다고 그것이 내 지식이라고 착각한 내 잘못이다. 그 착각 덕분에 '난 결코 모지리는 아니다!'라는 쾌락에도 취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우리는 무지하다. 개개인의 지식은 1기가도 되지 않는다. 그 조차도 타인에게 의존해서 정보를 얻는다. 우린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공동체에 기여한다. 우린 서로가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살고 있는거다. 지금 우리의 지식은 하나의 씨실과 날실처럼 얽히고설켜 예쁜 양탄자가 되는 기적을 맛보며 사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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