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
비프케 로렌츠 지음, 서유리 옮김 / 레드박스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보통 자기 전에 그날 하루의 일을 되짚어본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잘 보냈지~'라고 안도하는 날이 있는가 하면 '내가 미쳤지~ 왜 그랬을까?' 혼자 후회하며 이불 킥하는 날들도 많다. 이상하게 그런 날의 기억은 잊히지 않고, 떠올릴 때마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곤 한다. 나의 멘탈이 순두부로 만들어져 그런 거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내 흑역사는 흑역사도 아니었다.

흑역사 부자인 찰리가 지워버리고 싶었던 사건 워스트 5
1. 옆집에 사는 절친 줄리의 남자 친구와 잔 일.
2. 유부남과 사귄 일. 그 남자에게는 애도 있었다. 그것도 쌍둥이.
3. 운전면허 시험 도중 속도 측정 장치를 들이받고 도망간 일.
4. 완전 취해서 자전거 타고 가다 넘어졌을 때 출동한 경찰한테 반항한 일.
5. 어떤 남자의 머리를 맥주병으로 내려친 일(그 남자가 그녀의 몸을 더듬어서 그랬다. 그런데 그 술집은 그날 이후 찰리를 출입 금지시켰다.)

엄청나다. 내가 아무리 흑역사를 제조해도 이번 생에는 이 정도는 할 수 없다. 지울 수만 있다면 나라도 지우는 걸 선택하겠다. 왜 찰리는 이런 흑역사를 만든 걸까?

열여섯 첫사랑에 실패 트라우마(첫사랑인 모리츠 리히텐베르크와 로맨틱한 첫 경험을 그의 차고에서 치르려고 했는데 그때 친구들이 차고 문을 열었다. 으악!)로 인해 제대로 된 사랑과 인생을 못 살고 있는 29살의 찰리. 대학을 중퇴하고, 수년간 원 나이트 스탠드를 즐기고, 드링크스&모어란 바에서 알바를 한다. 게다가 그녀가 자주 입는 티셔츠엔 '헤픈 여자'란 글씨까지 적혀있다. 어느 날 동창회를 알리는 편지와 그녀의 첫사랑 모리츠가 그녀 앞에 나타난다. 무리해서 산 섹시한 캣 슈트(캣우먼이 입는 옷을 말하는 거 맞지?)를 입고 참석한 동창회는 엉망으로 끝나고 만다. 다음날 숙취로 고생하는 찰리에게 팀(친구이자 드링크스&모어의 사장)이 벗어준 군용 코트 안에서 '뉴 라이프 퍼스널 매니지먼트'라는 헤드헌터의 명함을 발견하고, 자신의 인생도 바꿔달라고 말하는 찰리! (화끈하구먼) 그리고 그녀의 흑역사를 지우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달라진 그녀의 인생. 모리츠와 결혼을 하고 이전 삶에선 꿈도 못 꿀 대궐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데...

이 책을 읽기도 전에 짐작하듯, 변하고 싶어서 선택한 건데 오히려 예전보다 못하다. 그리고 나비의 날갯짓처럼 미비한 일들이 태풍이 되어 삶을 변화시킨다. 내 인생도 그랬을까? 꺽정씨는 정말 아주 작은 우연이 인연이 된 경우라 조금만 바뀌었어도 못 만났을 거다. 꺽정씨를 만나기 전의 삶은 흑역사를 대량으로 생산하던 때(그래봤자 나에게만 흑역사지, 남들은 기억도 못할 거다. 얼른 흑역사가 가득한 일기장을 불태워야 하는데...)라 찰리처럼 쉽게 지울 엄두도 못 낸다. 지운다고 해서 내가 엄청 불행하게 살거나, 꽃미남 뺨칠 정도로 잘 생긴 남편과 살지는 않겠지. 아무리 과거를 지우고 노력해도 맷 보머의 와이프는 될 수 없어 ㅠㅠ(심지어 게이) 지금처럼 평범한 인생일 거다. 그럴 거면 굳이 힘들게 지울 필요는 없을 듯.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방법밖에...

음악을 좋아하는 찰리~ 찰리가 듣는 음악을 나도 들으며 책을 읽었다. 다행히도 나와도 맞는 찰리의 취향 덕분에 아는 노래가 많아서 반가웠다. (특히 레드 칠리 페퍼스의 '캘리포니케이션'과 에반에센스의 '브링 미 투 라이프'는 최고! 명곡이라 자부한다.) 노래가 많이 나오는 소설은 이래서 좋다. 모르는 노래는 유튜브에서 찾아 들으면서 읽으면 되니까... (그래서 맛있는 요리들이 즐비한 소설은 슬프다.)

표지는 감성적이지만 낄낄거리며 웃으며 읽은 <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를 오늘도 내 삶이 못마땅한 이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번 생도 그리 나쁘진 않을 거다. 흑역사 부자도 흑역사를 선택했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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