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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 플랜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19
스콧 스미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3월
평점 :

무서운 소설을 발견했다. 내용이 무섭다는 게 아니라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지 몰라서 잠도 안 재우려고 하는 책은 정말 오랜만이다. 스토리는 이렇다.
주인공인 행크와 낙오자인 형 제이콥, 그리고 제이콥의 친구인 루는 아버지 묘지로 가는 길에 우연히 눈 덮인 숲에서 추락한 경비행기를 발견한다. 거기에는 까마귀에게 눈을 파먹힌 조종사 시체가 있었고, 440만 달러의 현금 다발이 든 가방이 있었다. 그들은 잠시 고민을 한다. 신고할 것인가, 차지할 것인가. 간 땡이가 간장종지만 한 나는 당연히 신고를 하겠지만 그들은 대범하게도 돈을 챙긴다. 셋 중에서 가장 똑똑한 행크는 바로 돈을 나누지 않는다. 그럴 경우에 형들이 신나게 돈을 써서 그들의 범죄가 들통날 것임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6개월 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해질 때 나누기로 하고 그 사실을 비밀로 간직하기로 약속하는데...
책 제목처럼 행크의 계획은 단순했다. 6개월 후에 돈을 나누자~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좋겠지만 그들에겐 돈이 필요했고, 그렇기에 서로를 믿을 수 없었다. 도미노가 하나둘씩 쓰러지듯 행크는 때마다 단순한 계획을 새로 세워야 했다. 1인칭 시점으로 적힌 소설 속의 자기 합리화 쩌는 행크를 볼 때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러면서 다음은 그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궁금해졌다. 예전에 지금은 그저 쌍둥이 아버지인 '이휘재의 인생극장'이 떠올랐다. '그래, 결심했어!'를 외치며 선택을 하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결과로 이어질 때가 많았다. 행크는 그때의 이휘재보다 더 꼬일 때로 꼬이기 시작한다. 작가의 촘촘한 심리 묘사에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함정에 빠졌다. 우리는 한계를 넘어섰으며, 돌아갈 수 없다. 그 돈 덕분에 꿈꿀 기회를 얻었지만 그 때문에 현재의 삶을 경멸하게 되었다. 사료 상의 일, 알루미늄으로 옆면을 댄 집, 주변 마을. 우리는 그 모두를 이미 과거의 것으로 보고 있었다. 백만장자가 되기 전의 과거, 형편없고, 우울하고, 시시한 과거. 그러므로 어찌어찌하여 그 돈을 돌려주어야 한다 해도, 의미 있는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던 듯이 다 잊고 옛 생활로 돌아갈 수는 없게 되었다. 옛 생활을 멀리 떨어진 것으로 보았던 때로, 옛 생활을 평가하고 가치 없게 여겼던 때로 되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회복될 수 없는 상처였다.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다닥다닥 붙어사는 서울이란 동네에선 눈먼 돈을 발견하는 일은 절대로 불가능하겠지만(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을 보면 참 대단하는 생각이...) 만약에 셋이서 로또를 샀다면? 그래서 나누기로 했다면? 사이좋게 나누고 동화처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맺음을 할 수도 있고, 한 푼이라도 더 갖기 위해 개싸움이 날 지는 전혀 알 수 없다. 내 손에는 있지만 당장 내 것으로 할 수 없는 거액의 돈이 있다면 행크의 속마음처럼 나도 저런 마음일 것 같다. 더 좋은 것을 누릴 것을 상상하면서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소소한 행복들은 그저 누더기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로또 당첨자들의 불행한 이야기들을 접할 때가 있다. 아마도 그들의 반짝거리던 과거는 로또에 의해 찢기고 바래져서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었을지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기에 보고 싶다. 그런데 네이버 다운로드에서도, 어둠의 경로에서도 못 찾고 있다. 아~ 영화는 또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