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1
유키 마사미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0년 1월
평점 :
품절
패트레이버는 다양한 미디어로 진출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각각 고유의 분위기를 지
니고 있으며 세세한 설정들에서도 차이를 보입니다. 극 전체의 분위기나 주제부터 메
카닉이나 인간관계 설정등 까지 조금씩 다른 여러 종류의 패트레이버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지요. 이 중 코믹스판 패트레이버는 유우키 마사미씨의 성향이 가장 잘 나타나 있
다고 봅니다. 코믹스판의 경우도 이츠부치씨 등 헤드기어 멤버들이 모여 완성한 작품
입니다만 다른 매체에 비해 작가의 입김이랄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우키씨 특유의 분위기를 말이죠.
패트레이버가 만화나 애니메이션계에 갖는 위치라고 본다면 전 무엇보다 리얼계 로봇
물의 최종 진화점에 가까운 것이 바로 이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레이버라는 기계의
각종 설정이나 움직임, 구동계 등을 보아도 이 점은 부인하기 힘들겁니다. 그렇다면
과연 패트레이버는 '로봇물'인가? 라는 점에서 저는 그렇다고 수긍하기도 힘듭니다.
제 생각에는 패트레이버에서 레이버가 아닌 그 무엇이 대신 나오더라도 얘기는 성립할
것으로 보입니다. 즉 자동차, 헬기, 중장비... 무엇을 그 자리에 넣어도 패트레이버의
작중 세계는 깨지지 않고 성립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헤드기어의 작품 계획에서
는 로봇경찰물 이라는 기본을 토대로 작품이 성립한 것이 사실입니다만.
그렇게 본다면 패트레이버를 지탱해 나가는 큰 축은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사회를
담담히 비추며 그 속에서 벌어지는 블랙 코미디를 통한 비판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사실상 이 작품에서는 미스테리도 절대 악에 해당하는 악당도 없습니다. 스토리는 모
든 집단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100% 공개된 상황에서 진행됩니다. 또한 작중 특
차 2과의 가장 큰 대립집단이라고 할 만한 쉐프트 엔터프라이즈의 기획 7과 구성원들
또한 완벽한 악당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오히려 특차 2과의 이란성 쌍둥이와 같은 존
재라고 할까요. 이런 상황에서 작품의 큰 줄기인 AV98 잉그램과 Type J-9 그리폰의 대
결은 이야기의 소재는 될 지언정 주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이 이야기
하는 것은 바로 작품 전체의 내용 그대로라고 생각합니다. 즉 작중에 등장하는 사회,
인물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설정 상에는 시대적 배경이 1998년경에서 2001년 경 입니다. 지금은 과거지만 연재될 당시에는 약 10년 정도 미래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습은 레이버라는 기계가 돌아다니는 것만 제외한다면 80년대 말의 일본 모습 그대로입니다. 또한 당시 일본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그대로 들어가 있는 세계이기도 합니다. 정관유착, 환경오염, 공장자동화로 인한 노동자들의 불안, 외국인 노동자 문제, 다국적 기업과의 경쟁, 경제 호황이지만 이미 터지기 시작한 버블경제 등등... 결국 저는 80년대말 일본의 모습과 문제점들을 작가가 작품 속에서 특유의 화법으로 비판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날카롭긴 하지만 요란스럽지 않은 분위기로 말입니다.결국 담담히 세상을 보고 그 세상을 부드럽게 풍자하고 어떻게 보면 건조하게 묘사하는 점이 바로 패트레이버가 갖는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유우키씨가 잡지 연재 칼럼 중에 이런 얘기를 그린 적이 있습니다. '요새 어떤 만화가 유행하는지 서점에 가 봤다. '소녀혁명 우테나'? 이건 어떤 거지? (잠시 보고) ...뭐가 뭔지 모르겠다.' 작가 자신이 인정했듯이 80년대 말과 90년대 초를 기점으로 구분지어지는 요즘의 만화나 애니를 보면 확실히 작가도 작품도 이전 세대입니다. 그러나 형식과 내용에서 파격적이거나 틀을 깨부수는 듯한 점은 없지만, 바로 그 이전 세대의 스토리 텔링 방식이 이 작품에서는 더욱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또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그런 충격요법에 의존하지 않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이 또한 작가의 역량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