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들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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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우 작가 신간 소설 <모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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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_모르는 사람들
함께 있어도, 곁에 있어도, 같이 오랜시간을 보내고 있어도 당최 내 옆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혹은 생각이 읽히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결국 이것은 나의 마음고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남편을 닥달하는 아내에서 닥달할 수밖에 없었던 아내로 끝난다.
그녀의 삶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말하는 사람은 말만 하고 듣는 사람은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말하는 사람은 자기가 한 말을 듣기도 하는 사람이다. 어떤 점에서는 누구보다 잘 듣고 가장 잘 듣는 사람이다. 말하는 사람의 의중을 말하는 사람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말하는 사람이 불완전하거나 서툴게 말하면 그 말을 듣는 다른 사람은 불완전하거나 서툴게 듣지만, 그래서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옳게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해하지만, 말한 사람 자신은, 말해진 것이 불완전하고 서͈에도 불구하고, 그것과 상관없이, 완전하고 정확하게 듣는다. 그가 듣는 것이 말해진 말이 아니라 말해지기 전의 말이기 때문이다.(12p)

그때 마침 한 여자의 적극적인 구애를 받았고, 그 여자의 사랑과 그 여자의 사랑을 통해 얻게 될 것으로 기대되는 어떤 혜택들을 뿌리치지 못했다고. 그때의 자기는 고백과는 달리 세상이 제공하는 만족을 거절하지 못한 속물이었다고 썼다. "나는 세상에서 살았고, 그러나 세상은 험악했고, 살기에 적합하지 않았고, 내가 세상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이 너무 자주 깨달아졌고, 적합하지 않은 세상에서 살기 위해 아주 많이 애를 써야 했고, 무리를 해야 했고, 덩달아 험악해져야 했고, 그러나 잘되지 않았고, 그래서 잘살지 못했다. 살면서 자주 내가 참으로 살기를 갈망했던, 살지 못하고 있는 다른 삶을 그리워했다. 그리워만 하는 내가 혐오스러웠다. 하찮은 것에 간절해지지 말자는 말을 하찮은 것에 간절해지는 나를 향해 주문처럼 하곤 했다. 그것이 내가 세상을 견디고 혐오스러운 나를 견디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뭐라고 말하든 나는 세상에 붙들려 있었고, 세상과 어울려 있었고, 세상의 일부였고, 그러니까 세상을 견딘다는 것은 나를 견딘다는 뜻이기도 했다."(34p)

평생동안 다른 삶을 그리워하면서 사는 남자와 한집에서 살아야 했던, 그러나 정작 자신은 그리워할 다른 삶이 없었던, 그래서 자기가 붙어 있는 곳에서 자기를 떼어낼 생각을 할 수 없었던, 그래서 허전하고 화나고 숨막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데도 어떻게든 붙어 있으려고 버둥거렸을 어머니의 삶이 손에 잡히는 듯했다.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은 가장 모르는 사람이다.(36p)


2편_복숭아 향기
불행과 고통이 그녀의 삶을 지배하게 될 것을 예상했음 에도 불구하고, 그런 삶을 선택한 이유는 그녀의 말대로 과수원에서 짙게 나던 복숭아 향기에 홀려서였을까.

어떤 이야기는 자주 말해지고, 어떤 이야기는 덜 말해지거나 전혀 말해지지 않기도 한다. 자주 말해졌는데도 말해지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이야기가 있고 전혀 말해지지 않았는데도 자주 말해진 것으로 간주되는 이야기가 있다. 어떤 이야기는 말해져야 할 시간에 말해지고 어떤 이야기는 말해지지 않아야 할 시간에 말해진다. 말해질 시간에 말해진 이야기는 살지만, 혹은 살리지만, 삶으로써 살리지만, 말해지지 않을 시간에 말해진 이야기는 죽는다, 혹은 죽인다, 죽임으로써 죽는다. 어떤 이야기는 살고 살리기 위해 말해질 시간을 기다린다. 그것은 수순이 중요한 바둑의 한 수와 같다. 바둑알을 어떤 자리에 놓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자리에 언제 놓느냐가 중요하다.(52p)


3편_윔블던, 김태호
윔블던에 있던 김태호를 찾아달라는 건설사 회장의 부탁을 듣는다.
회장은 받았는지 훔쳤는지 정확하지 않은, 김태호로부터 가져온 그 돈을 돌려주기 위해 애타게 찾았다. 정신이 온전치 않은 회장으로부터 전해들은 말을 무시하려고 마음먹지만, 쉽게 그렇게 되지 않고 마음을 바꾸게 된다.

반가움이 아니라 무서움이었다는 그때의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 그는 갑자기 맞닥뜨린 친숙함이 가장 무섭다는 말을 했다. 친숙한 것들은 어떤 식으로든, 들러붙든가 뒤통수를 때리든가, 간섭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고, 또 실제로 간섭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는데, 그 말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했다.(89p)


4편_강의
갑자기 손가락에 힘이 없다고 말하며 일어나지 못한 아버지. 그의 아버지가 남겨놓고 간 빚더미 속에서 아들 또한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을 직감한다. 빚은 빚으로 갚아야 한다는 무서운 이야기.. 강의하듯 그 이야기를 전한다.

너무 늦기 전에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한 여기 올 리 없지요. 실은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여기 오는 시간을 미뤄서 진짜로 너무 늦어버리는 거예요. 희망이 날아가버리기 전까지만 붙잡고 있어야 하는 게 희망인데, 사람들이 그걸 이해 못행. 여기는 맨 꼭대기예요. 꼭대기보다 높은 데는 없어요. 희망이 날아가버린 다음에 남은 최후의 희망이 이곳에 오는 것인 셈이지요. 꼭대기에는 두개의 길이 있어요. 날거나 떨어지거나. 그것 말고는 없어요.(121p)


5편_찰스
김철수와 찰스의 이이갸. 김철수가 알고있는 찰스, 한국이름 철수는 그가 알고있는 그가 아니었다.

6편_넘어가지 않습니다
동거하던 폭력적인 남자를 떠나 모르는 곳에 머무르고 있는 그녀의 집을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리게 된다. 혹시나 그녀가 떠나온 남자가 아닐까하고. 하지만 그녀의 집을 서성거리던 남자는 외국노동자였다. 이유는 그 집 근처에서 와이파이가 잘 잡힌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읽을 때는 코끝이 찡해왔다.

그녀가 하려고 한 말은, 당신들이 아니라 당신들을 두려워하도록 만드는 무엇인가가 두렵다는 것이었다. 그 무엇인가가 당신들뿐 아니라 세상에 대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한다는 것이었다. 내 안의 두려움이 내 밖의 모든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한다, 그래서 문을 열지 못하게 한다, 그것이 문제다, 라는 것이었다.(179p)


7편_신의 말을 듣다
대학생 때, 김승종 그가 머물던 방을 수철에게 인계하는 도중에 난방이 고장났다는 사실을 하지 않은 사실이 오랜만에 만난 동창회에서 떠올랐다. 그 사소한 문제가 직접적으로 드러난 것도, 확실한 것도 아니었지만 김승종은 그 모임 이후 본인이 떳떳하지 못했던 행동을 지속적으로 생각하고 모든 일을 그 사건과 연관시키게 된다.

그러나 그 술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김승종은 자기를 비난하는 어떤 목소리를 듣고 흔들렸다. 아무도 그가 흔들리나는 걸 인식하지 못했다. 그를 흔들리게 한 사람조차 그가 흔들린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것은 그를 흔들리게 한 사람에게 그를 흔들리게 하려는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흔들리지만 그 나뭇잎을 흔들리게 하려고 바람이 분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나뭇잎이 흔들렸다는 사실만으로 바람에게 그 나뭇잎을 흔들리게 하려는 의지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어떤 현상이 항상 어떤 의지의 작용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193p)


8편_안정한 하루
장필수가 안정한 삶을 살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동생이 찾아와 오래전 있었던 일을 상기시키며 질문을 던진다.

계획대로 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의 일과가 단조롭고 규칙적이기 때문이다. 단조롭고 규칙적이기 위해서는 외부와 접촉하지 않거나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그의 삶이 그랬다. 그가 외부에 거의 간섭하지 않기 때문에 외부도 그를 거의 간섭하지 않는다.(226p)

정보의 공유가 공감의 전제 조건이 된다. (231p)


이승우_작가의 말
두 페이지로 이루어진 작가의 말 중 와닿지 않는 것이 없다.
괜히 이승우가 아니며 역시 이승우 작가이다.
겸손함을 가지고 글을 쓰는 그의 모습이 불투명하게 다가왔다.

이 책안에 대단한 것이 있을 리 없다. 내 안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성능 좋은 기구들이 그 좋은 성능 때문에 포착하지 못하는 구석진 세상 이치나 주눅든 진실 같은 것이 더듬거리는 허술한 손놀림에는 더러 붙잡히기도 할 거라는 믿음이 여전히 소설을 쓰는 사람의 여전한 희망이라는 말은 해두어야겠다.(244p)

각각의 소설들에 대한 그 소설을 쓸 때의 시대의 간섭이 선명하다. 어떤 소설은 그 간섭에 대한 토로이다. 세상이 요동칠 때 흔들리지 않는 마음은 없다. 가장 자율적인 것도 자율적이지 않다. 작가의 서툰 손놀림을 따라 구석진 세상 이치나 주눅든 진실 같은 것의 흔적을 같이 더듬어 헤아려보는 이가 독자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그런 의무를 스스로 짊어지는 이들, 여전히 소설을 쓰는 사람의 여전한 희망을 공유한 이들에게 혈육과도 같은 친밀감을 느낀다. 독자를 향해 쓴ㄴ 것이 아니라 그들과 같이 쓰는 것이 소설이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245p)

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한 가정에서 가장 노릇을 하는 아버지들의 무거운 어깨를 담아내고 있다. 세대가 바뀌고 시대가 변한다고 해도, 아버지가 되어 한 가정을 이끄는 남자들의 삶은 어려울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며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이 있다. 여자의 삶도 어렵겠지만, 대한민국 남자는 정말로 힘들 것 같다는 사실. 여자들이야 결혼, 육아를 통해서 잠시 회사를 떠날 꿈을 꾸고 상상을 할 수 있지만, 사실 남자의 경우, 즉 아버지의 경우 그러한 행동은 곧 무책임함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즉 평생 일을 해야지만 그나마 책임감있는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다.

또한 뒷부분에서 다루는 소설의 인물들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자주 등장한다. 5,6편에서 다루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미지는 다르게 묘사되지만, 6장에서 등장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그들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주는데 한 몫 한 것 같다. 이것을 의도해 소설을 썼는지만 모르겠지만 나에겐 그러한 작용이 왔다.

잘 아는 사람도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 자신도 나를 모르겠는데, 어찌 모든 사람의 속을 헤아리고 알 수 있을까. 홍상수 감독의 영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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