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문학의 숲에 첫 발을 딛고 나는 조금 실망했다.   무언가 풍성한 과실과 그동안 보지 못했던 고상한 풍경을 기대했던 나에게 펼쳐진 숲의 모습은 평범한 삶의 모습이었다.   나무가 있고 벤치가 있고 지금의 계절처럼 조금의 낙엽과 체온에 알맞은 산뜻한 바람이 있는……, 그냥 숲이었다.  

   

   “후~~~”

   긴장을 풀고 편안한 마음으로 조금씩 숲을 거닐었다.   더 이상 요구하지 않고 보여지는 숲의 아름다움을 감상했고 가다가 만난 벤치에 앉아 쉬기도 했다.

   숲을 거닐면서 이 숲엔 시간이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아니 그것은 시간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이 존재하지 않을 뿐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시간이 존재하고 있었다.  


   시의 매력에 빠져 살던 시간이 있었다.   어감을 느낄 수 없는 번역된 외국 시 보다는 단어 하나하나마다, 한 구절 한 구절마다 감정이 뚝뚝 묻어나는 우리나라 시인들의 시를 노트 여기저기마다 적어 놓고 외우던 시간이 있었다.   지금의 내 나이만큼도 살지 못하고 20대에 요절한 시인 이상의 자조적이면서도 세상을 조롱하는 듯한 시가 있었고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조지훈 시인이 있었고 님의 침묵의 한용운, 홀로서기의 서정윤 접시꽃 당신의 도종환, 낙화의 이병기 시인 등 아름다운 언어로 나의 감성을 살찌워 주던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있었다.   그 시절 나도 그들을 흉내 내며 어줍잖게 인생의 고뇌를 끄적이곤 했었던 것 같다.

   시와는 달리 고전은 국내외 작품을 가리지 않고 즐겨 읽었었다.   특히 국어 시간에 짧게 몇 줄로 요약된 내용들의 고전들을 읽고나서의 기분은 다른 아이들이 발견하지 못한 보물을 혼자만 발견한 듯, 괜히 뭔가 된 듯한 우쭐함 마저도 들곤 했다.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를 읽고 니나의 모습을 내가 살아갈 이상형의 모델로 삼기도 하고 니나를 사랑한 슈타인같은 존재가 내 옆에도 있었으면 하는 욕심도 부려보았다.   지금의 시선으로 보자면 유치하기 그지없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 고전의 목록에 있다는 사실에 황당해 하기도 했고 ‘데미안’을 읽고 무슨 병아리 새끼라도 된 양 알을 깨고 나오겠다던 나와 친구들의 모습도 그 시간 속에 있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 한 남자의 아내로서 그리고 반 혹은 반 이상을 살아온 한 인간의 입장에서 책 속의 인생을 접하며 웃고 울고 또 다른 미래를 설계한다.


   어느덧 올려다 본 숲의 나무엔 열매가 하나, 둘씩 매달려 있다.   추억의 열매, 그리움의 열매, 희망의 열매…….

   이거였구나.   스스로 문학과 함께 걸어 온 인생의 숲을 보여줌으로 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만의 숲을 발견하게 하는 것.    앞으로 나는 이 숲을 더욱 살찌우려한다.   내가 아직 접해보지 못한 많은 인생들을 더욱 많이 만나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르게 사는 것인지를, 행복하게 사는 것인지를 겸손하게 고민하며 인생을 느끼며 살아가려한다.   그리고 때때로 마음 맞는 친구 불러 놓고 수다도 떨어가며 무겁지 않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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