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미따
프란시스코 시오닐 호세 지음, 부희령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에르미따’를 읽으며 필리핀이라는 나라의 역사가 내가 최근 읽은 조정래씨의 대하소설 ‘아리랑’, ‘태백산맥’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한강’에서 묘사된 우리나라의 이야기와 너무 닮아 있는데 놀랐다. 조정래씨의 대하소설들이 각계각층의 여러 인물들이 사회전반에 걸쳐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다른 생각, 다른 생활을 하며 살았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역사를 세세한 부분까지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면 시오닐 호세의 ‘에르미따’는 시대가 낳은 전설적 창녀 에르미따의 시선과 생활사을 통해 필리핀의 아픈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조정래씨의 대하소설들을 읽고 우리의 아픈 역사를 속속들이 들여다본 후에 만난 ‘에르미따’였기에 더욱 의미 있게 읽게 된 것 같다.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필리핀에 대한 상식은 고작 섬이 많은 나라라는 것, 물가가 싸서 교육 받은 필리핀의 고급 인력을 가사 도우미로 두고 영어와 집안일을 함께 해결할 수도 있다는 것, 그러나 그 곳의 영어가 미국의 본토 영어와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 정도일 뿐이었다.

   그러나 스페인의 식민지, 대지주와 소작인의 대립, 일본의 태평양 전쟁, 또다시 미국의 내정, 군사독재정치, 학생들의 데모……, 이러한 필리핀의 역사를 보면서 우리만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한 조금의 위안과 함께 왜 아시아라는 대륙이 유럽 열강과 미국, 그리고 같은 아시아의 나라이면서도 세계정복의 야심으로 온 나라를 들쑤셔댔던 일본에 의해 유린당해야만 했는지, 그러한 과도기적 역사를 겪으면서 아직도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쟁취하지 못하고 과거를 덮어두기에 급급해 하며 나라의 위기 상황에서도 제 살 길만 생각하며 강자에 붙어 부를 축적했던, 아직도 축적하고 있는 자들을 그대로 보고만 있어야 하는지 답답할 뿐이다.


   작가는 글을 읽는 사람이 아닌 자신과 같이 글을 쓰는 작가들이 사회비판보다 기술에 중점을 두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영어로 글을 쓰는, 예술가인 체하는 일단의 작가들, 그중의 일부는 대학에 몸담고 해외의 최신 문학 흐름에 영향을 받았는데, 제가 그들 중에 속한 사람이었다면 그러했을 거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들과 우리 토착 작가들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실재하는 것은 글 쓰는 기술에만 관심을 갖고 매달리는 그들의 집착이 그들 자신을 사회로부터 격리시켰기 때문입니다. 토착작가들은 땅에 아주 근접해 있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대중을 향한 사회비평가를 겸하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들과 함께하게 되어 아주 행복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우리 작가들에 대한 경고인데, 그들이 필리핀인들이라면 언제나 자기 민족을 위해 글을 써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미국과 영국, 혹은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사회 비판을 수행하는 소설들을 한물간 것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문학의 기능과 문학으로 민족의식을 일깨울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문학의 더 중요한 기능은 아마도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묘사일 것 입니다. 문학은 도덕적 딜레마를 제시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 있게 해주며, 신이 부여한 도덕적 선택에 대한 자유를 구가하게 해줍니다. 어떠한 종교도, 정부도, 정치적 운동도 이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과거에 식민주의와 싸우도록 독려한 민족의식과 민족지도자들의 선의를 우리가 되찾을 수 있을까요?’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다.

   나 또한 올바른 역사의 진실은 문학을 통해서 얻었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는 집권세력의 옹호를 위한 왜곡된 진실을 심어주기에 급급했었다. 내가 조정래 씨의 역사소설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 시대를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급급해하며 과거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미래의 안위만을 쫓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라도 올바른 역사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오랜 시간 진실 된 역사 알리기에 힘쓰는 작가들에게 고맙고 그에 대한 작은 보답으로 그들의 책을 열심히 읽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