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
헤르만 헤세 지음, 김이섭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창 사춘기 시절 집에 있던 세계문학전집을 한권씩 읽어나가다가 헤세를 만났었다. 내가 기억하는 헤세의 작품은 단연 <데미안>이다. 하지만 내용은 벌써 까마득한 과거 속에서 가물가물하고 그 시절 친구들과 데미안의 서두에 나오는 구절을 유행처럼 읊조리며 알 속 병아리새끼라도 된 양 알을 깨고 나와야 된다느니 위대한 아브락삭스니 했었던 기억만이 남아있다.


   그 후로 헤세의 작품을 몇 편인가 더 읽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눈에 익은 제목의 <수레바퀴 아래서>도 언젠가 한번쯤 읽어 보았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읽어보니 낯익은 제목과는 달리 내가 만나보지 못한 헤세의 또 다른 작품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소위 문학작품이라고 알려진 책들 대부분의 제목은 너무도 익숙하게 잘 알고 있어 당연히 그 내용까지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그 책들을 읽게 되었을 때 내가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내용과 전혀 다른 이야기임을 알고 깜짝 놀란 일이 많았다. 안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전혀 몰랐던 것을 제대로 알게 되었을 때 문학을 읽는 기쁨이 더 커지는 것 같다.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는 또 한 가지는 왜 그 작품들이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에게 읽혀지는가 하는 점이다.

   때로 시대적 전환점에서 새로운 장르의 첫 장을 열었다는 점에 문학적 가치를 두거나 도대체 어떤 부분이 문학적 가치가 있다는 것일까 하는 주관적 의문이 들기도 하는 작품도 있지만 문학작품이라 일컫는 책들을 읽다보면 시대를 초월한 인간적 본연의 감수성과 다양한 삶의 방법들을 간접경험 하게 된다.

   이제라도 겸손한 마음으로 다시 문학작품을 한권씩 읽어보기로 마음먹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나이에 읽었던 작품들도 그 만큼의 나이를 더 먹은 요즘에 읽어 보면 또 다른 감흥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 시절의 느낌과 지금의 느낌을 비교해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품은 한 소년의 내면적 성장과 좌절을 그린 자전적 소설이다. 헤세 자신도 이 작품의 주인공 한스처럼 신학교에 들어갔으나 적응하지 못하고 뛰쳐나오고 말았다. 헤세는 그러한 좌절을 딛고 작가로서 성공하였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 한스는 끝내 수레바퀴 아래서 자멸하고 만다. 헤세는 자신이 품었던 죽음의 유혹을 한스에게 실행시켜 주지는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한스의 삶은 작가의 자전적 경험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금의 아이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요즘도 지나친 기대와 자신이 이루지 못한 삶에 대한 보상으로 부모나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다그친다. 무기력하게 어른들의 이끌림 속에 오로지 대학과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미래의 성공을 위해 십여 년을 학교와 학원 사이에서 오가던 아이들이 한스와 같이 좌절하지 않으리라 보장할 수 없다.


   이 책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으면서 한스와 비슷한 나이에 지나갔던 나의 사춘기 시절이 아련히 떠올라 가슴 한편이 싸해진다. 그와 동시에 이제는 소녀가 아닌 기성세대를 대표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음을 깨달으며 씁쓸해 하는 나를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