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 꽤나 가깝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에겐 작가 박완서씨가 그런 사람이다. TV에서 자주 보았던 연기자를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을 때 나도 모르게 마치 가까운 친척이라도 만난 듯 반갑게 인사를 했던 경험처럼 작가의 새로운 책 ‘호미’를 손에 들고 나는 오랜만에 가까운 지인이라도 만난 듯 반가웠다.


   책의 앞 장에 나온 작가의 사진은 그러한 반가움 뒤에 으레 느끼게 되는 흘러간 세월을 말해 주고 있다. 거의 10여 년 전에 읽었던 작가의 또 다른 에세이 ‘어른 노릇 사람 노릇’에 나온 작가의 얼굴과 비교해보면 10여년의 세월이 만들어낸 시간만큼의 주름이 웃음 짓는 그의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어느덧 작가는 인생의 황혼녘에 접어들어 자신의 이야기와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사를 나이 든 사람만큼의 어른스러움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작가의 글을 읽는 나도 어느덧 인생의 반을 살면서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한 흰머리와 눈가 주름을 걱정하는 나이로 접어들어서인지

   “칠십 년은 끔찍하게 긴 세월이다. 그러나 건져 올릴 수 있는 장면이 고작 반나절 동안에 대여섯 번도 더 연속상연하고도 시간이 남아도는 분량밖에 안되다니. 눈물이 날 것 같은 허망감을 시냇물 소리가 다독거려준다. 그 물소리는 마치 모든 건 다 지나간다, 모든 건 다 지나가게 돼 있다, 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들린다.”

   는 작가의 말이 가슴 절절히 다가온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회귀 본능이 있나보다.

   어릴 적 엄마가 식물을 가꾸시면서 조심스럽지 못해서 식물을 상하게 하는 우리를 야단치실 때 자식보다 식물을 아끼는(그 때는 어린마음에 그렇게 생각했다.) 엄마를 원망했었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엄마와 나란히 화원을 찾아다니며 예쁜 꽃이며 선인장들을 하나 둘씩 사 모으고 있다. 주변을 살펴보아도 나이를 먹으면서 땅을 찾아 산에 오르고 식물을 가꾸는 이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작가 또한 책의 서두부터 호미를 예찬하며 자신의 화단을 정성껏 가꾸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남이야 뭐라 하든 무턱대고 자랑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자연 속에서 순리를 배운다. 성공한 여류 소설가라기보다는 지극히 평범한 옆 집 할머니 같은 꾸밈없는 작가의 모습이 나를 미소 짖게 한다.


   그런 작가가 마지막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의 말년을 걱정하여 깔끔하게 생을 마감할 것을 소망하며 당부하는 이야기는 나를 가슴 아프게 한다.

   그러나 한편 그것은 언젠가 작가가

   “나는 읽고 쓰는 재주밖에 없고, 죽는 날까지 그걸로 버틸 작정이고 그게 자신에게 위로가 되는 건 사실이지만.”

   라고 이야기한 바와 같이 생이 다할 때까지 열심히 글을 쓰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 아닐까한다.

   

   지금의 작가에게 꼭 어울릴 것 같은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라는 시의 앞부분을 덧붙여본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한다.

      장미의 용모, 붉은 입술, 나긋나긋한 손발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정열을 가리킨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의 청신함을 말한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선호하는 마음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20세 청년보다는 70세 인간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더해가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

      세월은 피부에 주름살을 늘려가지만

      열정을 잃으면 마음이 시든다.

      고뇌, 공포, 실망에 의해서 기력은 땅을 기고

      정신은 먼지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