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 - 이광수 장편소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9
이광수 지음, 김철 책임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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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에 대하여 작품 해설자는

   ‘지난 세기 이래 한국인들이 어떤 욕망에 들려 있었던가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정밀한 거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고 대신 이 거울을 만든 사람의 변절과 배신을 소리 높여 질타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곳곳에서 보이는 조선인에 대한 생각과 실력양성론을 부르짖던 작가가 쓴 민족 개조론과 일맥상통하는 부분들을 읽다 보면 같은 민족으로서 자신의 민족을 게으른 무식쟁이들로 매도하는 작가에 대한 질타를 하지 않기는 참으로 힘들다.

   소설이 아무리 허구라지만 대부분 작가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고 은연 중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주인공 또는 그 외의 등장인물을 통해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형식은 신문명의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나 그의 사고나 행동을 보면 확고함 보다는 우유부단하고 이율배반적인 부분이 많아 보인다. 그런 형식이 조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함교장이 조선의 나아갈 바를 연설하는 대목을 보아도 이광수가 민족개조론에서 말하는 조선의 나아갈 바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는 항상 말하기를 우리 조선 사람의 살아날 유일의 길은 우리 조선 사람으로 하여금 세계에 가장 문명한 모든 민족-즉 일본 민족만한 문명 정도에 달함에 있다하고 이리함에는 우리나라에 크게 공부하는 사람이 많이 생겨야한다 하였다. 그러므로 그가 생각하기를 이 줄을 자각한 자기의 책임은 아무쪼록 책을 많이 공부하여 완전히 세계의 문명을 이해하고 이를 조선 사람에게 선전함에 있다 하였다.’ -p98

   ‘지금 조선은 정히 페스탈로치를 기다리는 땐 줄 아네. 조선 사람을 전혀 새 조선 사람을 만들려면 교육밖에 무엇으로 하겠나. 어는 시대 어느 나라가 아니 그렇겠나마는 더구나 시급히 낡은 조선을 버리고 신문명화한 신조선을 만들어야 한 조선에서는 만인이 다 교육을 위하여 힘써야 할 줄 아네.’ (-p323 유학 가는 형식이 우선에게 하는 말)

    ‘그의 말하는 제목은 조선 사람도 남과 같이 옛날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문명을 실어 들여야 할 일과 지금 조선 사람은 게으르고 기력이 없나니 새롭고 잘사는 민족이 되려거든 불가불 새 정신을 가지고 새 용기를 내어야 한다는 것과, 이렇게 하려면 교육이 으뜸이니 아들이나 딸이나 반드시 새로운 교육을 받아야 한다 함이라.’ -p130

    ‘그러나 현재의 조선인은 이와 반대외다. 허위 되고 공상과 공론만 즐겨 나타하고 서로 신의와 충성이 없고 이기적이어서 사회 봉사심과 단결력이 없고 극히 빈궁하고, 이런 의미로 보아 이 개조는 조선 민족의 성격을 현재의 상태에서 정반대 방면으로 변환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민족개조론 일부


   비단 형식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영채와 병욱이 남대문에 도착한 장면에서 풍경을 묘사한 부분을 보면 일본이 우리에게 가져다 놓은 시끄러운 소음을 ‘문명의 소리’라 말하며 더더욱 요란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전차소리, 인력거 소리, 이 모든 소리를 합한 ‘도회의 소리!’ 와 넓은 플랫폼에 울리는 나막신 소리가 합하여 지금까지 고요한 자연 속에 있던 사람의 귀에는 퍽 소요하게 들린다. ‘도회의 소리!’ 그러나 그것이 ‘문명의 소리’다 . 그 소리가 요란할수록에 그 나라가 잘된다. 수레바퀴소리, 증기와 전기기관 소리, 쇠망치 소리……. 이러한 모든 소리가 합하여서 비로소 찬란한 문명을 낳는다. 실로 현대의 문명은 소리의 문명이다. 서울도 아직 소리가 부족하다. 종로나 남대문 통에 서서 서로 말소리가 아니 들리리만큼 문명의 소리가 요란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불쌍하다. 서울 장안에 사는 삼십여 만 흰옷 입은 사람들은 이 소리의 뜻을 모른다. 또 이 소리와는 상관이 없다. 그네는 이 소리를 들을 줄을 알고, 듣고 기뻐할 줄을 알고, 마침내 제 손으로 이 소리를 내도록 되어야한다.’ -p390


   한편 생각하면 새로운 지식의 교육과 함께 새로운 문명을 받아 들여야 우리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는 애국적인 말처럼 들리나 작가의 근본 밑바탕에 깔린 서구문명과 일본에 대한 사대주의를 생각하면 민족애가 아닌 결국 겉 멋 들린 어설픈 지식인의 자아도취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글을 쓰는 자는 자신의 글에 책임을 져야한다. 나라를 빼앗긴 마당에 같은 피를 나눈 민족에게 자부심과 자긍심을 심어 독립을 꽤하지는 못할지라도 열등한 민족으로 몰아  붙이며 나라를 빼앗은 일본을 찬양하는 비열한 짓은 하지 말았어야했다. 누구의 말처럼 살아남기 위해서였다면 붓을 꺾었거나 자신의 주 종목인 애정소설에만 충실했다면 후세에 매국노의 낙인은 면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부자 조상 아니 둔 거지가 어디 있으며 거지 조상 아니 둔 부자가 어디 있으리오. 저 부귀한 자를 보매 자기네는 천지개벽 이래로 부귀하여 천지가 없어질 때까지 부귀할 듯하나 그네의 조상이 일찍 거지로 다른 부자의 대문에서 그 집 개로 더불어 식은 밥을 다툰 적이 있었고 또 얼마 못하여 그네의 자손도 장차 그리될 날이 있을 것이라.’-p33,34


   이렇듯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고 있던 작가가 어찌 일본이 거지 조상 둔 부자였음을 깨닫지 못했을까. 일본이 천지개벽 이래로 부귀하여 천지가 없어질 때까지 부귀할 듯 했으나 결국 천지 분간하지 못하고 두 눈 벌겋게 남의 땅을 집어 삼키려던 그들은 지구 곳곳에 전쟁 뒤의 아픈 상처만 남겨 놓고 말았다.


   변절자의 글이니 없애버리자고, 읽지도 말자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소위 지식인이며 스스로 나라를 생각 한다 주장했던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글 쓰는 자의 소임이 무엇인지 진정한 나라사랑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를 삼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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