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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의 지혜 - 한 세기를 살아온 인생 철학자, 알리스 할머니가 들려주는 희망의 선율
캐롤라인 스토신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인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참 절묘한 타이밍…….'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접하게 된 시기가.
나는 올해 30살이 되었고, 대학교 졸업 이후 몇 년간 아무 의미가 없는 삶을 살아왔다. 20살 이전까지는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았던 나. 노는 것도 공부도 열심히 해서 내 인생의 모든 열정을 그 때 다 써버린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악순환이었다. 한 번 게으름과 자기 합리화라는 타성에 젖어버린 후로는, 마치 찬물을 끼얹은 모닥불처럼 나에게 열정이라는 것이 생기지 않았다. 일을 하기는 했지만 생활을 유지할 정도일 뿐, 그렇게 저축도 하지 않고 공부도 하지 않으며 빈둥거리며 지냈다. 가끔씩 마음 속 매우 깊은 곳에서 '20대라는 소중한 이 순간을 무의미하게 살면 안 돼. 나중에 내가 나이가 들었을 때 지금의 나를 뼈에 사무치도록 후회할지도 몰라.' 이런 생각이 들어 무언가를 하려고 해도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고는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겨우 20대였는데, 인생이라는 긴 레이스에서 고작 초반부였는데 말이다.
2012년 12월 31일. 나의 20대가 이렇게 끝나버린다는 것이 믿을 수 없었다. 누구보다 꿈많고 열정이 넘치던 내 모습이 사무치게 그리워서 울었다. 그러다가 아주 오래도록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달라졌다, 분명히.
나는 어쩌면 10대 때 겪었던 조금 불행한 일들을 핑계로 스스로에게 '나는 힘든 일을 많이 겪은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 알리스 할머니는 세상 사람들이 기억하는 세계사의 가장 큰 비극, 홀로코스트를 직접 겪으신 분이다. 소중한 가족을 잃고 스스로도 수용소 생활을 했다. 그 누가 보더라도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정신적인 고통 중에 그보다 아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알리스 할머니는 세상과 사람과 인생을 사랑했고 사랑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의 내 모습이 하나하나 생각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도 나는 행복했다. 친구들에게는 '행복해질 수 없는 상황이란 없어'라고 말하고 다녔다. 알리스 할머니와 예전의 나, 공통점은 바로 사랑과 열정이다. 내가 10대때까지만 지닐 수 있었던 그 감정을 100세가 훌쩍 넘긴 지금에도 여전히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부럽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알리스 할머니의 그 열정의 중심에는 음악이 있다.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때를 제외하고 그녀는 매일같이 피아노 연주를 해왔다.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이 아니면, 백 년 가까이
동일한 아픔을 겪고 있는 수용소 재소자들을 위해 음악회를 열었던 대목에서 예전에 본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떠올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의 비극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의 나에게도 조금은 아프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비극 속에서 웃음을 잃지 않던 영화 속 주인공처럼 알리스 할머니도 늘 웃어왔을 것이다. 그저 조금 무서운 일이라고만 느꼈을 순수한 어린 아이들이 웃음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면서 그 과정에서 스스로도 살아갈 힘을 얻은 것이 아닐까.
책 중에서 특히 내 마음을 파고든 말이 있다.
"나는 죽을 때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어요.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거든요. 내 삶을 제대로 살았노라 믿어요."
나는 일반적으로 죽음을 생각하기엔 이른 나이지만, 난 늘 내가 죽는 그 순간을 두려워했다. 죽는다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죽는 순간에 지나온 내 삶에 대한 후회로만 가득할까봐 그것이 두려웠다.
그에 대한 해답은? 정말 간단하다. 후회하지 않는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최선을 다하기. 지금 이 순간은 영원히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런 소중한 시간을, 부정적인 감정에 소모하고 갖지 못한 것에 집착하며 보내는 것은 정말 바보같은 것이라는 것, 사실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천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직 실감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머리로만 이해할 뿐,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약 10대나 20대 초반의 친구들에게 내가 지금에서야 깨달은 무언가를 이야기해줘도 그들에게 와닿지 않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소중한 사실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된다. 알리스 할머니는 그 사실을 남들보다 일찍 알고 있었고, 그랬기에 더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현재 나에게는 작지만 큰 변화가 진행중이다. 알리스 할머니가 알려 준 백 년의 지혜가 머리에서 마음으로 전해질 수 있도록. 내일, 오늘보다 더 행복한 내가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