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경계 - 풍요로운 세계에서의 빈곤과 굶주림의 역설
프란시스 무어 라페 외 지음, 신경아 옮김 / 이후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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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런 가정을 해보자. 지금으로부터 몇 세기가 지나지 않은 지구에 커다란 재앙이 닥친다. 그것은 대기 오염이나 방사능 오염 물질, 또는 민족국가 간의 대규모 전쟁 때문이 아니라 바로 먹을 것-식량의 수급량 부족에서 오는 인류의 멸망이다. 그런데 이것이 가정에 그칠 수 있을까? 전 세계의 학자들, 특히 생명 공학과 식량에 관계된 조직을 책임지고 있는 인사들은 가정에 그칠 문제가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아프리카 어느 지역에서 굶어 죽어가는 어린 아이의 사진을 들먹이면서, 이미 식량 부족으로 인한 폐해가 전세계 도처에서 수시로 발생되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새로운 품종의 개발과 이로 인한 식량의 확보를 위해 유전 공학이 속속 발표해내는 결과들은 이미 '경이'의 차원을 넘어섰다. 그런데도 여전히 지구의 한 귀퉁이에서는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는 아이들이 존재한다면, 그들의 연구-품종의 개량, 유전자 변이, 살충제에 강한 옥수수, 성장촉진호르몬이 투여된 젖소의 우유-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지구의 한편에서는 비만과 그로 인한 합병증 등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또 다른 한편에서는 하루에 한끼 먹을 량의 곡식이 없어서 사망한다. 그들은 어쩌면 식량 확보가 우선이 아니라 잘살고 풍요로운 나라와 그들의 계급을 위한 특별한 다이어트용 식량을 개발 중인지도 모른다.

저자인 프란시스 무어 라페와 그녀의 딸 안나 라페는 세계 여러 나라를 순례하면서, 안전하고 민주적이며 첨단 과학이 개입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탁월한 자체 식량 수급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사람들과 만난다. 라페 모녀가 만난 이 작은 행성에 발 붙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식량을, 민주주의를, 그리고 그들이 조금씩 넓혀가고 있는 희망의 경계를 얘기한다. 이 책은 단순히 "왜 식량인가?"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관념의 함정, 그리고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선택"과 "희망"에 관해 말하고 있다.

라페 모녀의 여행은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이 제시한 "우리를 가로막는 다섯 가지 생각들 - 하나, 우리의 적은 결핍이다. 생산만이 우리의 구세주이다. 둘, 우리의 이기적인 유전자에 감사하라. 셋, 시장이 결정하게 내버려두라. 전문가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넷, 문제는 분리해서 풀라. 다섯, 역사의 종언을 환영하라."라는 다섯 항목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증명해보이기 위한 기나긴 여정이다. 그리고 두 모녀는 우리의 상상력을 가로막고 희망의 경계를 확장하는 일을 방해하는 관념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준다. 식량의 "안전한" 확보와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유기농법들, 그리고 보다 나은 농작물을 위한 건강한 토지의 분배 및 재생산 등은 미국 뿐만아니라 브라질과 방글라데시, 인도, 케냐와 중앙아메리카 등지에서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가 올바른 민주주의와 간섭받지 않는 상상력으로 이 작은 행성에서 희망의 경계를 밖으로밖으로 확대시켜나가는 표본이었다.

지금은 라이프 스타일 전반에 걸친 문화적 차원의 웰빙이 되었지만, 처음으로 '웰빙'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것은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음식, 즉 식량의 차원에서였다. 그렇듯 인간에게 있어서 '먹을것'이란 무시할 수 없는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유전자 변이에 의한 신종 작물의 탄생에 대해서는 그저 "바로 지금" 일신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등한시 한다. 그것은 현재의 풍요와 궁극적인 빈곤에 대한 안이한 사고에서 비롯된다. 9장 <파리에서의 마지막 미각>에는 "레조 아그리콜 뒤라블Reseau Agricole Durable)", 즉 "지속 가능한 농업 네트워크"라는 말이 나온다. 연약한 우리의 사고에 "뒤라블"(견고함)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다.

라페 모녀는 여행을 마치고 "우리를 해방시키는 관념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알고는 있지만 우리가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 현재의 삶에 안주하려 하고 문제의 본질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기 위해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 이러한 틀에서 해방되는 다섯 가지 관념. 그것은 이 책 안에, 그리고 이 작은 행성에 존재하는 여러 나라의 곳곳에 존재한다. 이것이 우리를 더 확장된 가능성의 영역으로, 희망의 영역으로 안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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