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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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은 신기한 작가다. 


독자의 마음 속에 깊은 동심원을 그리며 서서히 퍼져나가는 이야기는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우리 삶의 한 단상을 보여준다. 

성탄특선을 읽으며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작품 속 두 남매의 모습이 나와 동생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소설을 읽기 전부터 이 소설은 존재해왔지만, 마치 내 삶을 활자로 옮긴 것 같은 착각을 해보기도 했다. 

단칸방에 오누이가 함께 산다는 이야기는 사실 아무에게나 말하기에는 좀 꺼려지는 면이 있다. 네걸음이면 방의 이 끝에서 저 끝으로 걸을 수 있는 좁디좁은 방. 그 방에서 나와 동생은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살았다. 남매가 함께 살면 분명 민망한 일도 일어나기 일쑤고 여러모로 불편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처지에 수긍하며 그럭저럭 버텨 살았다. 우리들만의 생존방식을 구축하고, 규칙을 만들면서. 때로는 함께 요리를 하고 산책을 하고 말동무가 되어주면서...



소설 속 오누이는 돈이 없다, 그래서 연애도 데이트로 엉망이고 삶도 비루하다. 새로운 옷을 사도 그에 걸맞는 다른 옷이나 소품이 없어 '스카프를 둘러맨 오리처럼 어정쩡한' 여동생은 '세련됨'이란 '생활의 여유'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동생은 남자친구가 '한 번도 여자의 옷맵시를 비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입을 옷이 변변찮단 이유로 도망쳐버린 것이다.'



오빠인 남자는 또 어떤가.

회사에 대한 정보를 분석하고 면접용 답안을 만들고 필기시험을 준비한다. 하지만 남자에게는 시간 뿐만이 아니라 돈도 없다.



'기본적인 교통비나 식대에서부터 예상치 못한 축의금까지 돈 들어가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게다가 면접용 양복이라도 한 벌 사는 날엔 두 달치 생활비가 금방 날아갔다. 면접에서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선 양복도 싼 것만을 고집할 순 없었다. 그러나 양복을 사고 나면 구두를 사야 했고, 구두를 사고 나면 가방을 사야 했다. 그렇게 몇 차례 면접을 보면 계절이 바뀌었고, 계절이 바뀌면 또 다른 양복이 필요했다. 언젠가 몹시 추웠던 겨울날, 코트 살 돈이 없던 남자응 사진의 낡은 점퍼를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는 것 같아 식은땀을 흘렸다. 하지만 남자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시험 때마나 '붙을 듯 말 듯'한 성적으로 떨어진다는 사실이었다. 남자를 자신을 격려해주는 여자 앞에서 '이 여자, 나를 견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책했다. 그러다 온갖 연말 청구서가 몰아치는 12월이 되었고, 한 번 더 시험에 낙방하고 생활비도 거의 바닥났을 즈음 - 말하자면 역병처럼 크리스마스가 돌아온 것이었다.'



연인과의 데이트에서 쓸 돈이 얼마나 들 것인가를 계산해보는 남자, 남자는 크리스마스 데이트 비용 10만원이 없어 여자에게 '어머님이 편찮으시다.'는 말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대신한다. 각자의 '방'조차도 가질 수 없는 두 남매. 남매의 이야기로 비루한 청춘을 선명하게, 마치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 처럼 써낸 작가의 솜씨가 놀라웠다.



'천만원이면 인생이 크게 달라지는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던 소설 속 이야기 처럼 우리도 필사적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녹록치 않고, 이것이 되물림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 비루하고 비루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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