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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평점 :
박민규의 소설을 처음 읽었던 것은 대학 신입생 때였다. 동기들 사이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작가였는데 이름은 들어봤지만 책을 읽어본 적은 없는 작가였다. 다들 무언가 '신선'하고 '독특'하면서 진한 울림이 있는 그야말로 '이전에는 없던 소설'이라고 했다. 궁금했다. 사실 당시에는 한국 소설책을 많이 읽어본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흐름의 소설들은 비슷비슷하다는 인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비슷비슷하다고 느꼈던 소설들 때문에 우리나라 소설은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박민규의 소설은 첫 문장 부터 강렬했다.
마이클 잭슨에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라고 쓰여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소설의 첫 문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면대면으로 만날 일도 없을 마이클 잭슨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그 패기, 거기에 머리를 꽝하고 얻어맞은 것 같았다. 어쩌면 기존 소설가들의 진지함에 일침을 놓는 듯한 장난기도 느껴졌고, 어쨌든 '이사람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책을 펴자마자 왔던 것이다.
소설집의 첫 단편「카스테라」의 첫 문장 또한 이런 강렬함, 신선함을 그대로 이어간다.
이 냉장고의 전생은 훌리건이었을 것이다.
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굉장히 새로웠기 때문에 이 소설가가 처음 문단에 나타났을 때 어땠을 지가 궁금해졌다. 단편마다 느껴지는 젊음과 우주로 나아갈 수 있는 상상력과 비틀고 사유하는 힘. 정말 읽을수록 감동이 벅차 올랐다. 이런 소설이 지구에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되었다.
박민규 작가의 강점은 냉소적인 것 같고 불만투성이에 비뚤어진 것 같은 이야기들 속에 휴머니즘이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널 위로하고 있어.'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 작가의 마음 속에는 정말로 여린 소년이 살고 있는 것 같다. 씁쓸하지만 루저, 패배자, 아웃사이더로 정의되는 그런 냄새를 풍기는 이 소년은 조용히 카스테라를 건낸다.
그 어떤 위로보다 '따뜻한, 반듯하고 보드라운 직육면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