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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 ㅣ 창비청소년문학 2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창비 / 2007년 8월
평점 :
책 뒤에 쓰여 있는 간단한 책소개를 하자면 이렇다.
"지독히 운이 안 따라주는 집안에서 태어난 소년 스탠리.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운동화 한 켤례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막 한가운데의 소년원에 갇힌다. 영문도 모른 채 구덩이를 파는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결국 탈출을 시도하는데……. 스탠리는 과연 5대에 걸친 가문의 불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운이 따라주지 않는 주인공 '스탠리 옐내츠'(Stanley Yelnats, 거꾸로 읽어도 스탠리 옐내츠)는 자신의 불운을
'아무짝에도-쓸모없고-지저분하고-냄새-풀풀-나는-돼지도둑-고조할아버지' 탓이라 생각한다.
'고조할아버지가 발이 하나밖에 없는 집씨 여인한테서 돼지를 훔치는 바람에' 자손 대대로 저주가 내려오고 있다는 사연 때문이다.
물론 저주를 믿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 탓을 할 수 있는 것이 나쁠 게 없다는 다소 이상한 낙천성을 지닌 스탠리 가족.
도입 부분 부터 심상치 않은 등장인물들이 나와 빠르게 진행되는 탓에 한 번 손에 잡으면 놓기가 힘들다.
스탠리 옐내츠의 이름, 하필 머리 위에 떨어진 운동화가 '달콤한 발' 이지만 발냄새가 지독한 야구선수
클라이드 리빙스턴이 자선 경매에 내놓은 것, 그리고 그 운동화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게 된 이유는
스탠리의 아버지가 낡은 운동화를 새 운동화로 바꾸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기 때문, '초록호수 캠프'지만 사막이고,
'키스하는 케이트 바로우'에게 강도를 당한 증조할아버지는 키스를 당하지 못했다.
단어들만 따로 떼어내서 보아도 굉장히 재기발랄하고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설정이라는 느낌이 온다.
처음에는 과거와 현재를 불친절하게 오가는 이야기에 산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이자 가장 주된 이야기는 스탠리가 초록호수 캠프에서 구덩이를 파면서 생기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중간중간 사랑에 실패한 엘리아의 이야기와 저주, 흑인 양파 장수를 사랑한 백인 케이트 바로우의 이야기가 나온다.
신기한 것은 읽다보면 이 세가지 이야기들이 정교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
맞물린 이야기들이 통쾌한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엉망진창, 불운한 삶을 살 것 같았던 스탠리에게 이 불운은 커다란 행운이 되어가는 것이다.
간결한 문체와 다소 불친절한 것 같았던 구성은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커다란 카타르시스가 되어 돌아온다.
작품 전체에 흐르는 유머러스함도 대단하다. 모든 이야기들과 물건들이 저마다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메세지를 잃지 않고 있다.
강제노역을 하는 소년원 아이들이 제대로 보호되지 못하는 상황과 폭력, 인종차별 문제 등이 유머 속에서 가벼운 듯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스탠리가 불운을 행운으로 뒤바꾸어, 초록호수 캠프를 떠나면서
그러니까, 악을 무찌르고 승리를 거두는 결말에서 느껴지는 쾌감! 굉장하다.
청소년들에게 꼭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