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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ㅣ 김승옥 소설전집 1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평점 :
김승옥의 소설 「夜行」속 주인공 현주는 남편과 같은 은행에서 근무하는 평범한 여성이다. 그러나 그녀는 길에서 낯선 사내를 만난 이후로 예정된 삶, 울타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에 시달린다.
결혼을 했음에도 그녀와 남편은 직장에 결혼 사실을 알리지 못하며 연기를 한다. 연기가 불안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이미 습관화되어 있다.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 부분, 은행에서 그녀가 남편을 ‘박선생님’이 아닌 “여보!”라고 불렀던 것은 그녀 안에 존재하는 무의식 속의 욕망이 구체화 된 것으로 보인다.
“그 사건이 생긴 데 대하여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그 불량배가 아니라 자기와 자기의 남편이어야 한다고 그 여자는 생각하였다.”
“그 사람은 자기를 데려다주었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더 나은 곳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적어도 ‘이곳’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었다.”
낯선 남자에게 끌려 여관에 갔었던 기억이 그녀에게 뒤틀린 일상을 주었다는 점에서 어떤 해방감을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에게 일상은 어쩌면 전쟁이었을 지도 모른다. 연기를 하고, 적군에게 연기를 들키지 않기 위해 긴장을 느끼며 살아야 했기 때문에 그녀 안에 있는 어떤 감정들은 억눌리고 억압받아왔을 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녀는 감시병의 총격을 피해, 울타리를 넘어 어딘가로 도망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오늘 밤도 남편과 구별되지 않는 엇비슷한 월급쟁이들 틈 속을 걸으며 자신을 탈출시켜줄 이를테면 ‘사내’와 같은 남자를 찾아 셔터가 내려진 도시를 배회하는 것이다.
‘이곳’을 벗어나 자신 안의 새로운 욕망을 채우고 싶어 하는 것은 누구나의 의식이나 무의식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어디든 번화가의 늦은 밤길, 화려하게 빛나고 있는 네온싸인은 누군가 나에게 가져다 줄 공포와 혼란 속에서 해방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빛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