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전집 1 - 시 김수영 전집 1
김수영 지음, 이영준 엮음 / 민음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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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젊은시절의 많은 시간은 김수영의 시를 읽는데 썼다. 세월이 지난 후에 돌이켜봐도 다른 어떤 시간보다 만족스럽다. 하도 옆구리에 끼고 다녀서 겉장이 너덜너덜해지는 바람에 같은 시집을 몇 번씩 다시 사야 했는데, 간혹 사귀게 되던 여자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여자랑 팔짱을 죽어도 끼지 못하겠다는데 김수영 시집을 핑계로 내세웠던 탓이다. 그러다가 누군가 그렇게 애지중지 하는 김수영의 시에 반가워하거나 하면 아낌없이 내주기도 했다. 그런 바람에 김수영 시집을 많이 살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흘러 김수영도 생활에 뒤쳐지고 시도 문학도 모두 그러하였다. 그렇다고 와이셔츠에 넥타이에 매여산 것도 아니고 예술계에 줄곧 머무르면서도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물 속에서도 갈증을 느끼듯이 김수영과 몇몇의 시인들은 술에 몹시 취한 날이면 모질게 떠난 여자처럼 머리 속에 떠올랐다.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 지경의 나는 서가의 책들을 노끈으로 묶어 창고에 처박아두었다. 읽지도 않는 책은 전시용일 뿐이고 읽지 않는다고 책을 작부 신세로 만들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창고 어딘가에 김수영의 시집이 분명 있을테지만 굳이 먼지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 온라인 주문으로 하나를 구입키로 했다. 아침무렵에 주문했는데 저녁쯤에 배달이 된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태만한 중국집보다 나은 배달이었다. 기분이 좋았다. 오랫만에 김수영 시를 대하는 것도 그런데, 다음날쯤으로 생각했던 책이 도착하니 더 반가웠다. 1시간만 앉아있다가 일어나야 한다는 친구가 어디선가 전화를 받고 "야, 오늘 제껴도 된다. 코 삐뚤어지게 푸자!"할 때 덤으로 얻어지는 시간의 기쁨처럼.

박스를 뜯어 책 중간을 아무렇게나 펼쳤다.아참, 나는 책을 읽는 못된 습관이 있다. 머릿말을 읽지 않는다. 그리고 옛날 시집들 끝에 꼭 집어넣는 해설을 죽어도 읽지 않았다. 반 영어 반 한글의 빨간책(오해하지 마시라. 과거 영어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이 지니고 다녔던 문고판 영어소설)도 아니고 적어도 시라면 나만의 감각과 고민으로 이해하는 것이 무조건 옳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태도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펼치니 190쪽이다. 김수영의 시가 대체로 그렇지만 절묘하게도 현재를 무지 아프게 꼬집는다.
푸른 하늘을..이란 시다.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김수영이 이 시를 쓴 것이 1960년 6월 15일이다. 지금으로부터 꼬박 50년전이다. 그때로부터 그많은 시간이 흘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유롭다고 한다. 돈이 없어 그렇지 세상은 살 만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김수영 식으로 말하자면 무엇이 있어야 살 만한 세상은 살 만한 세상이 아니다. 말장난같지만 자유에 대해서 엄격했던 김수영은 몇 퍼센트의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모두 자유롭다고 하지만 이 시를 읽자니 문득 자유라는 말이 봉인에서 풀려나는 기분이 든다.

21세기 서울은 더 이상 자유라는 단어를 부러워할 시인도 없고, 그것을 보고 피 없이 무슨 자유!라며 힐난할 시인도 없다. 63년에 죽은 김수영에게 부끄럽고 또 부럽기도 한 2010년이다. 계발서가 호객하는 서점가에서 문득 자기 자신이 잘못 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한번이라도 든 적 있다면 김수영의 시에 머리를 파묻어보기 바란다. 해답은 찾지 못하겠지만 해답을 찾고자 하는 열정은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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