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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골목에 사는 남자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8
이토야마 아키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작가정신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리뷰를 쓰자고 마음을 먹고 나서 한참을 망설였다.
이 묘한 느낌과 설렘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사랑에 빠진, 아니 사랑에 빠지기 직전, 자신의 감정을 알아채지 못한 채 그저 두근두근하면서 모든 것을 다 의심해버리는 바보 같은 사람처럼, 자꾸만 자꾸만 망설여지고 자신감이 사라졌다.....
*
나는 어느 날 새벽 막다른 골목길, 처마 끝에 냉이가 자라는 그의 집 앞을 도둑고양이처럼 서성이다가,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와 마주친다.
나는 어느 어둠침침한 재즈바 카운터 안쪽 깊숙한 자리에서 나를 찌를 듯이 바라보는 그를 만난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 난생 처음 오른 버스에서 그로테스크한 꽃처럼 활짝 핀 얼굴로 내게 묘한 미소를 보내는 그를 만난다.
나는 그를 좇아 교실로, 학교 옥상으로, 서점으로, 옷가게로, 재즈 바로, 온 거리를 헤매고 다닌다.
가끔은 길을 잃은 아이처럼, 질투에 눈 먼 성인 여자처럼, 눈물을 흘리고, 모두가 다니는 길거리 한가운데서 갈 곳 없이 멍하니 서 있다.
등뼈가 부러져 병원에 누운 그에게 가기 위해 나는 술에 취한 채 차를 몰고 160킬로로 달려 그에게 간다.
그래도 그는 나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
나는 그가 영원히 낫지 않길 바란다.
손 한 번 잡은 적 없이 12년 동안 그를 바라만 본다.
나는 그가 죽으면 그의 뼈 중에서 작은 조각 하나를 슬쩍할 생각이다. 반은 막자사발에 갈아 카페오레에 넣어 마실 것이다. 그러면 내 뼈가 될 것이다. 나머지 반은 주머니 속에, 작은 주머니 속에 넣어 불안할 때나 힘들 때마다 만질 것이다.
*
긴 여운을 남기는 이 사랑 이야기 때문에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말도 안 되는 어리석은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내가 바라보지만 나를 바라보지 않는 남자,
막다른 골목 끝 집에 살면서, 마치 그곳이 자신의 세계 전부인양 세상으로 나오지 않으려는 철부지 같은 소설가 지망생을 사랑하는 한 여자의 길고 긴 사랑 이야기다.
가슴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