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책이 아닌 작품이다!

그리스인 조르바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처음부터 중반쯤 까지는 사실 작품이 난해했다. 이해해 보려고 애쓰며 읽었던 초등학교 때의 어린왕자 같았다. 작품 속 오고가는 대화들이 의미심장하지만 알쏭달쏭해서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중반 이후로 점점 ‘조르바’라는 인물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읽으면 읽을수록 조르바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책을 다 읽고 탁 덮었을 때 나는 조르바를 사랑하게 되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글 속 화자)’는 나와 굉장히 닮은 인물이었다. 파랑새를 쫓는 사나이랄까. 이상을 좇고 이루기 위해 읽고 쓴다. 나름대로 ‘교양’ 있는 ‘지성인’이다. 따라서 ‘인간다운 고상함’을 추구한다. 자신의 가치관이 옳다고 믿으며 그 가치관에 어긋나는 욕구는 ‘나쁜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절제하려고 애쓴다. 그래서 항상 자신을 채찍질하고 옭아맨다. 하지만 조르바의 자유로움, 낙천주의, 무한한 자신감과 당당함, 두둑한 배짱 그리고 단순함이 내심 부럽다. 나는 세상을 바르게(옳은 방향으로) 살기 위해 골똘히 생각하고 나를 옥죄는데 반해 조르바는 옳고 그름을 규정짓지 않고 그 틀 속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고백 하자면 나는 여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조르바와 같은 사람은 “속물적인 사람”이라거나 “교양이 없고 단순무식한 사람”이라고. 그래서 무시했고 내가 더 고차원적인 사람이라는, 일종의 오만함에 빠져있었다. 그런데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창피했다. 내 가치관이 항상 옳고 바르다는 착각 속에서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비아냥거렸던 나의 거만함이 부끄러웠다. 나는 내 마음의 소리를 듣고도 용감하게 시도해보지 못해 회피했다. 그리고 비겁하게 스스로 변명하기 바빴다. 나를 속였고 타인도 속였다. 조르바는 인간적이고 순수하며 솔직했다. 그는 최소한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존중한다. 물론 이것은 타인에게까지 확장된다. 그리고 변명을 늘어놓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이리저리 계산하고 재지도 않는다. 그저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거침없이 실천에 옮긴다. 그리고 최대한 열심히 해본다. 잘되거나 못되거나 그건 조르바에게 중요치 않다. 마음의 소리를 듣고 실천에 옮겼느냐가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마음은 풍족하고 두려울 것이 없다.

이렇게만 봤을 때 조르바는 무책임하고 정의롭지 못한 행동도 양심의 가책 없이 실천에 옮겼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 조르바는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인물이다. 따라서 자신의 마음 즉, 양심에 충실하며 속이지 않고 책임을 진다. 조르바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와 감정에 충실할 뿐이다. 그리고 현재를 최대한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아! 마음속에서 터져 나오는 감동과 느낌, 그리고 생각들을 글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만큼 지금도 여전히 흘러넘치고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매우 철학적이고 심도 깊은 작품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우리가 항상 잊고 있는 삶의 근본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갑갑한 현실 속에서 아득바득 살고 있는 내가 불쌍하게 느껴지고 마음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은 허무감에 빠졌을 때 읽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