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 에세이 - 개정증보판 동녘선서 70
김교빈.이현구 지음 / 동녘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법 없이도 살 사람’

심성이 곱고, 남과 다투는 일이 없고. 이런 사람에게 흔히 하는 말이다. 우리 아버지도 이런 명예로운 타이틀을 훈장처럼 달고 사셨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과연 그런가? 접촉사고가 났을 때, 긴 줄을 서야할 때, 다운계약서를 쓰고 위장전입을 하는 장관후보자의 뉴스를 볼 때,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은 과연 ‘법’없이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까? 오히려 ‘법’이야말로 그 순박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보호 장구가 아닐까. 그래서 옛말은 이렇게 바뀌어야 하는 지도 모르겠다. 법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사람.

 

이번 강의는 법가(法家)에 대한 내용이었다. 관중(管仲), 상앙(商鞅), 한비자(韓非子)로 대표되는 이들 법가의 사상은 진 시황제가 통일국가를 이루고 조직을 정비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유가(儒家)의 사상이 예(禮)를 보편적으로 적용하면서 민중을 상향 평등화시켰다면, 법가(法家)는 군주 이외의 모든 사람에게 무차별적인 법을 적용함으로써 하향 평등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군주가 치술(治術)할 수 있는 수단으로 법(法)을 이용했던 것이다.

 

법가의 법 실현은 매우 가혹하고 상세했다. 예를 들면 ‘죄인을 숨겨주면 허리를 벤다’, ‘쓰레기를 버리면 손을 자른다’는 식이다. 以刑去刑이다. 법에 규정된 대로 형벌을 엄격하게 집행함으로써 차후 사소한 범죄도 저지르지 않게 하겠다는 의도다. 법은, 두려움에 관한 인간의 심리적 약점을 십분 활용하여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유용한 방법이었다.

 

한비자의 법가 사상을 기반으로 진 시황은 천하를 통일했다. 진나라는 도량형을 통일하고, 도로를 만들고, 분서갱유를 하면서 일사분란하게 나라를 정비했다. 중국 역사상 최초로 통일왕국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 위대한 나라는 고작 15년 만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 이유를 새겨보는 것이야말로 의미 있는 작업이리라. 김교빈 교수는 이번 강의에서 진나라 멸망의 이유를 두 가지로 짚었다. 첫째, 가정 단위로 집단을 조직하여 연대책임을 묻는 식으로 기계적인 법적용을 하여 인간 관계망을 끊어버린 것. 둘째, 전쟁에 소용이 없는 시와 음악은 쓸 데 없다는 논리로 문화의 토대를 없애버린 것.

 

‘인간’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태도’가 만들어진다.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고 게으르다고 규정하면, 선한 상태로 이끌어내기 위해 가르치고 혹은 가혹하게 벌을 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것이며, 인간의 본성을 선하다고 규정하면, 그 본성이 드러나도록 기다리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 아, 아니다. 태도를 선택하는 데도 각양각색이 될 수 있겠다. 본성을 찾고 발현시키기 위해 혹독한 수련을 하게 할 수도 있고, 본성을 가리고 있는 사악한 표피를 벗긴다는 명분으로 참람한 일을 저지를 수도 있다. ㅠ ㅠ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가 영화화 되었다. 소설보다 소설 같은 실제사건을 재수사해야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피해자가 가해자와 합의를 하고 고소를 취하하면 판사도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것이 지금까지의 법 현실이었다. 법은 법일 뿐. 순박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방패가 되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다.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순박하지 않고 힘없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술이나 한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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